최근 국내 업체가 국산화에 성공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정에 투입하기 시작한 것은 고순도 불화수소다. 불화수소는 무수불산을 정제해 액체 혹은 기체 형태로 제조하며, 반도체 세정 및 식각 공정에 사용하거나 일부 첨가제를 섞어 실리콘 산화막 두께를 줄이는 데 사용한다. 기체형은 불화수소(Hydrogen Fluoride), 액체형은 불산(Hydrofluoric acid)으로 구분하며, 모두 일본의 규제 대상으로 분류됐다. 우리나라의 불화수소 일본 수입의존도는 2005년까지 90%대였으나 지난해 42%로 떨어졌다.
디스플레이용은 반도체에 비해 순도 기준이 낮아 국산화 속도가 더 빠르다. LG디스플레이가 이미 솔브레인의 불화수소를 공정에 투입한 데 이어 삼성디스플레이도 이달 중 테스트를 끝낼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국산화에 성공한 국내 업체 솔브레인은 중국산 원료를 들여와 99.999%(일명 파이브 나인) 순도의 액상(HF) 불화수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반도체 핵심 공정에서 요구되는 불화수소의 순도는 99.9999999999%(트웰브 나인)으로 일본 스텔라, 모리타 케미칼 등이 전세계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재 일부 공정에 국산 불화수소를 투입하는 것은 가능하나 일본제품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초 최소 6개월 이상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2개월 만에 까다로운 테스트를 통과하고 일본산을 대체한 것은 기대 이상의 결과로 평가된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IT 소재·부품·장비의 대일 수입의존도 현황과 국산화 가능성 검토’ 보고서에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7개 품목의 국산화 가능성을 검토한 결과 6개 품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연구원은 불화폴리이미드,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외에 블랭크마스크, 포토마스크, 섀도마스크, 실리콘웨이퍼도 향후 일본의 규제 대상이 될 것으로 봤다. 이들 7개 품목의 대일 수입금액은 지난해 기준 13억6600만달러에 달한다. 이중 포토레지스트를 제외한 6개 품목은 2∼3년 내에 국내 기업 제품으로 대체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수진 수석연구원은 “7개 품목은 특허 장벽이 높고, 기술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실제 생산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실패 리스크가 높다”면서 “2년 내외에 예상 수준의 국산화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 규제를 완화하고, 대기업 고객사들이 국내 기술의 품질 검증 기회를 확대해주며, 적극 채택하려는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국산화 성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수출규제 대상 업계의 불안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일본은 최근 3개 규제 품목 중 포토리레스트와 고순도 불화수소 수출을 세 차례 허가했지만, 언제든 자의적으로 수출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 업계는 당분간 대체 불가능한 핵심소재를 공급하는 일본 거래선과의 관계가 악화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일본 기업과 거래관계에 있는 국내 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기업의 66.6%가 ‘일본 기업과의 거래관계에서 신뢰가 약화됐다’고 우려했다.
한·일 무역갈등의 와중에 삼성전자는 이날 일본 도쿄 시나가와(品川) 인터시티 홀에서 ‘삼성 파운드리 포럼(SFF) 2019 재팬’을 개최했다. 삼성 파운드리 포럼은 삼성전자가 주요 국가를 돌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의 로드맵과 신기술을 소개하는 행사로, 올해 미국·중국·한국에 이어 열렸다. 일본의 수출규제 변수가 불거지면서 일본 포럼의 취소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삼성 측은 “매년 열리는 행사로 포럼의 내용이나 성격은 변하는 게 없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에서는 파운드리사업부의 정은승 사장과 이상현 마케팅팀장(상무) 등이 참석해 현지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업체) 및 디자인하우스(칩 디자인을 통해 팹리스와 파운드리를 연결하는 업체) 고객사, 애널리스트 등을 상대로 ‘파운드리 청사진’을 공개했다. 특히 일본 수출규제의 주요 타깃인 첨단 극자외선(EUV) 공정에 대한 설명도 진행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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