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연구한 심리학자 릭 슈나이더의 일화이다. 어느 날 슈나이더 집 변기가 갑자기 고장 나 물이 새기 시작했다. 슈나이더는 오래전부터 그의 집 안 곳곳을 수리해 준 토미라는 수리공에게 도움을 청했다. 토미는 무척 바빴지만 단골 고객의 전화를 받고는 이른 아침부터 정오가 될 때까지 열심히 수리해주었다. 그러면서 토미는 급한 불은 껐지만 교체할 부품이 없어 내일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오후에는 장례식에 갈 일이 있어 양해를 구한다면서.
얼마 후 슈나이더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토미가 참석한다던 그 장례식의 주인공은 바로 토미의 장성한 아들이었던 것이다. 토미는 사랑하는 아들을 영원히 보내야 하는 그 황망한 슬픔 속에서도 오랜 단골의 다급한 요청을 외면하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왔던 것이다.
과연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위해 베풀어준 수고와 배려에 대한 고마움을 얼마나 표현하면서 살아가는가. 우리는 미세먼지가 심각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아무 생각 없이 누리고 살았던 깨끗한 공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정작 사람들이 우리에게 조건 없이 베푼 많은 선의를 알아채지 못한 채 살아간다. 심지어 어떤 날은 내 주위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불편한 사람만 가득하다고 비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실은 우리를 위해 걱정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지내는 게 아닐까.
금세기 최고의 아름다운 음악이라는 클라우디오 발리오니가 작사·작곡한 ‘이 작고도 위대한 사랑’(Questo Piccolo Grande Amore)처럼 사랑은 아주 작지만 위대한 것이다. 아마 ‘이 작고도 위대한 사랑’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부모의 사랑일 것이다. 중국 학자 한영이 쓴 ‘시경’ 해설서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음)라는 말이 있다. 필자는 이 말을 들을 때 마다 작고한 부모를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지구 한 바퀴라도 단숨에 달려가겠다던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효도가 중요하다는 원론적이고 도덕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말이 맞고 상대의 말은 틀렸다는 이분법적인 사고와 매사 자신의 이익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기심이 만연한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맹자가 말한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 :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해야 함)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 시작은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부터 헤아리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어쩌면 사람들의 선의를 그저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지는 않은가.
소중한 이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을 감사하고, 그들의 사랑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행복의 시작일 것이다. 우리는 너무 바쁘다는 이유와 함께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데에만 몰두한 나머지 사람들이 우리에게 베푸는 배려에 대해 감사하는 것마저 잊어 버렸다. 그래서인가. 강은교 시인은 ‘사랑법’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의 등 뒤에 있다.”고.
이제 곧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다. 삶에 바빠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 친지, 이웃과 마음에 가득 담긴 정(情)을 나눠보자.
이동귀 연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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