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특정된 이모(56)씨가 경찰 1차 조사에 이어 2차 조사에서도 줄곧 혐의를 부인했다.
DNA 증거가 나왔음에도 이씨가 범행을 시인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20일 “이씨는 1급 모범수로 면회를 오는 가족도 있다. 가족들에게 돌아갈 기대를 하며 가석방을 기대하고 있어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며 “저항 능력이 없는 여성 약자만을 노리는 특성 때문에 자신보다 강자만 있는 교도소에서 1급 모범수가 됐지만 출소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년 지나면 가석방 받을 수 있어… 가족에게 돌아가려는 것”
이 교수는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 사람은 이미 무기수다. 무기수는 제소자 사이에서 다 통용되는 진실이 20년쯤 지나면 가석방을 받을 수 있다는 거다. ‘더 살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기대들이 (교도소에선) 일상화돼있다”며 ‘1급 모범수’ 이씨가 가석방을 노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씨에게 가족도 있다. 영치금을 넣어주고 면회 오는 가족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가족들에게 돌아갈 기대를 하지 않겠나”라고 분석했다.
이씨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혐의를 부인하는 이유에 대해선 “(공소 시효가 지나) 물론 처벌은 안 받는다 해도 시인을 하게 되면 죽을 때까지 ‘화성 연쇄 살인범’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아야 한다”며 “(가석방과) 멀어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시인을) 안 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싶다”고 추측했다.
◆“여성 약자만 노려 교도소에서 1급 모범수… 사회 나오면 문제 생겨”
교도소 측에 따르면 이씨는 수감생활 중 한 번이라도 규율을 어기거나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고, 동료 수용자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 교수는 저항 능력이 없는 여성 약자만을 노린 이씨의 성향 때문에 교도소에서 1급 모범수가 될 수 있었다고도 풀이했다. 그는 “대부분 아주 연약한 여성, 예컨대 10대 여자들이나 나이가 많으신 여성들이 피해자였다”며 “여성들에게만 포악한 습성을 드러내는 이런 욕구라면 교도소 안에는 대상자가 없다. 자기보다 체격이 큰 남자 수용자들, 교정직원들 사이에서는 사실 폭력성을 드러낼 기회 자체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출소 후엔 이씨의 문제가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경찰, 대규모 수사팀 꾸려 장기전에 대비
경찰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대규모 수사팀을 꾸려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반기수 2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57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조직해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고 있다고 20일 밝혔다.
앞서 경찰은 DNA 분석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에 힘입어 지난 7월 연쇄살인사건 증거물 일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 의뢰한 것을 시작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총 10차례의 화성연쇄살인사건 중 5·7·9차 사건의 증거물에서 용의자 이씨의 DNA가 검출됐다. 경찰은 이들 3건과 모방 범죄로 판명이 난 8차 사건을 제외한 다른 6건의 사건에서도 이씨의 DNA가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보고 DNA 감정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이씨는 1995년 처제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확정 선고받고 현재 부산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1차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했던 이씨는 2차 조사에서도 자신과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다시 형사들을 보내 3차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반기수 2부장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4년 7개월간 있었던 사건”이라며 “수사기록이 방대하고, 증거물의 양이 많은데, 모든 것을 제로베이스(원점)에 두고 종합적인 수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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