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해지는 듯 싶었던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공포가 다시 피어오르고 있다. 지난달 27일 이후 추가 발병이 없었던 ASF의 추가 확진 사례가 2일부터 이틀 만에 4건이 추가로 나오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 ASF가 장기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어 돼지고기 소매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ASF 첫 발병지에서 하루 만에 2건 추가 확진
농림축산식품부는 2일과 3일 경기 파주에서 3건, 김포에서 1건의 ASF 확진 판정이 나왔다고 3일 밝혔다. 지난달 17일 파주에서 첫 ASF 확진 판정이 나온 이후 확진 사례는 총 13건으로 늘어났다.
이번 확진 판정은 파주 파평면과 적성면, 문산읍, 김포 통진읍에 소재한 농가에서 나왔다. 이들 농가에서는 7500여마리의 돼지를 사육 중으로, 반경 3㎞ 이내에는 3만9000여마리의 돼지를 기르고 있다.
농식품부는 ASF 긴급행동지침에 따라 반경 3㎞ 이내의 농장에서 기르는 돼지를 살처분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 농장의 돼지도 전날 오전부터 살처분이 진행됐다.
잠잠했던 ASF의 확진 판정이 잇따라 나오면서, 농식품부는 2일 오전 3시30분부터 48시간 동안 경기와 강원, 인천지역에 일시이동중지명령을 내렸다. 이동중지 대상은 가축이나 분료, 사료 등을 운반하는 축산 관련 차량이 대상이다.
ASF 확진 사례가 두자릿수를 넘어가면서 소강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기대했던 ASF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됐다. ASF는 지난달 27일 인천 강화 하점면에서 확진 판정이 나온 뒤 추가 사례가 나오지 않았다. 지난 주말에는 축산 1번지인 충남 홍성에서 의심사례가 나와 방역당국이 비상에 걸렸으나 음성 판정이 나오면서 숨을 돌리던 차였다. ASF의 잠복기가 최장 19일에 달하는 만큼, 적어도 이달 말까지도 ASF에 대한 경계를 내려놓을 수 없을 전망이다.
◆ASF 장기화 조짐에 돼지고기 가격도 들썩
ASF의 추가 확진 판정으로 안정화되는 듯 했던 돼지고기 가격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그간 돼지고기 도매가는 ASF 확산에 따른 돼지이동중지명령이 내려질 때마다 등락을 거듭했다. 이날도 농식품부가 경기·강원지역의 돼지이동중지명령을 내림에 따라 공급이 불안정해지고 가격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달 17일 ASF의 첫 확진 판정이 나오자, 다음날인 18일 돼지고기 도매가는 ㎏당 6201원까지 급등했다. 이후 지난달 27일 ASF 확진 판정 이후 ASF가 잠잠해지면서 1일 기준 4031원까지 떨어졌다. 최근 국내 돼지고기 유통이 비교적 원활하게 이뤄지면서 비축분이 생겨 당장 가격이 치솟을 가능성은 낮지만, ASF가 장기화될 경우 공급의 불안정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살처분 돼지가 늘고 있는 점도 돼지고기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살처분 대상이 된 돼지는 11만마리를 넘었다. 이는 지난 6월 기준 국내 사육 돼지 수인 1132만마리의 1% 수준이다.
당장 국내 돼지고기 가격이 치솟을 경우 가격 안정을 위한 대체 공급처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중국의 ASF 확산에 따른 국제 육류가격 인상은 국내 ASF 발병과 맞물려 소비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치사율 100%, 백신 없는데 감염경로마저 불투명
ASF의 공포는 백신이나 치료약이 없는 데다, 감염 경로마저 불투명하다는 점에 있다. 앞서 ASF는 중국과 북한에서 먼저 발생했고, 국내에는 경기 북부와 인천 강화 등 북한과의 접경지역에서 발생한 만큼 ‘북한에서 감염균이 옮겨왔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ASF 바이러스를 무엇이 옮겼는지 구체적인 전파 경로가 확실하지 않아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특히 7차 ASF 발생지인 인천 석모도의 경우 이미 문을 닫은 농장에서 ASF가 발생했는데, 차량 역학 관계마저 없던 곳이어서 의문을 낳고 있다. 방역당국은 지하수나 모기, 진드기 등 매개체가 될 수 있는 모든 경우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에 힘을 쏟고 있다.
방역당국은 ASF의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ASF 발생 농가 반경 10㎞를 중심으로 방역대를 설치하고 있다. 살처분 범위도 발생 농가 반경 500m에서 반경 3㎞로 넓혀 이 범위의 모든 돼지를 살처분하고 있다.
오순민 농식품부 방역정책국장은 “발생지가 경기 북부에 집중돼 있어 감염병이 남하하지 않도록 이 지역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파주에서 추가로 발생했기에 중점관리지역 설정 기간을 연장하는 것을 포함해 여러 대책을 종합적으로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