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나선 애경그룹이 아시아나의 기밀 자료를 통째로 공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경향신문이 보도했다.
아시아나 측이 이를 거부하면서 매각·인수자 관계인 양측이 이례적으로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항공업계에서는 애경의 요구가 무리한 것이며, 아시아나 인수보다 계열사 제주항공 운영을 염두에 둔 ‘노하우 빼가기’ 시도란 비판이 나온다.
◆항공업계 "애경 요구는 무리"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경향신문에 “지난 2일과 7일 아시아나가 인수적격후보로 선정된 곳들을 상대로 경영진 프레젠테이션(PT)을 실시했다”며 “이 과정에서 애경이 아시아나의 리스 정보 전체 등을 요구해 아시아나가 이를 거부했다”고 8일 밝혔다.
아시아나는 지난 2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애경 경영진을 상대로 매각 실사자료를 제시하며 PT를 실시했다. 그러나 애경 측은 아시아나가 리스로 운영하는 항공기 54대에 대한 계약서 전부를 공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가 운항 중인 각 노선별 손익 및 거점지역별 인력운영 현황 등 구체적인 항공사 운영 정보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경향신문에 “특히 항공기 리스 정보의 경우 항공사의 기밀 중에서도 최고급 기밀에 속하고 리스업체와도 비밀유지 계약이 돼 있다”며 “아시아나 내부에서는 ‘의도가 뭐냐’는 격앙된 반응도 나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PT를 받은 인수후보 중 애경만 이런 정보들을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항공업계에서도 애경의 요구가 무리수란 비판이 나왔다.
양측과 무관한 다른 항공사 관계자는 경향신문에 “리스 정보를 받아간 뒤에 아시아나를 인수하지 않는다면, 제주항공이 이 정보를 활용해 리스사를 압박하는 등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며 “누가 봐도 애경이 아시아나 인수보다 운영 노하우와 장거리 운항 관련한 고급 정보 습득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비친다”고 말했다.
◆업계 "누가 봐도 애경이 아시아나 인수보다 운항 고급정보 습득 관심 있는 것으로 비춰져"
애경의 자금력이 매각가격이 2조원 규모에 달하는 아시아나를 인수할 만큼 여유있는 상태가 아니란 점도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애경의 현금 동원력은 아시아나 인수전에 ‘올인’하더라도 2000억~3000억원 수준인 데다 자회사인 제주항공이 비상경영에 돌입한 상태여서 ‘제 코가 석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령 애경이 인수전을 완주해도 에어부산이나 에어서울 등은 인수하지 않거나 쪼개 팔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시아나 구성원들의 기류도 심상찮다. 후발 업체인 저비용항공사(LCC)가 국내 양대 항공사이자 세계 20위권인 아시아나의 새 주인이 되는 상황을 심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것이다.
◆애경 "경영 노하우 습득설 사실무근…아시아나 인수하겠다는 게 진짜 목표"
애경 관계자는 경향신문에 “우발채무 등을 파악해야 하므로 기업 실사 때 (리스 등) 계약서 검토가 가장 중요하다”며 “그게 아니면 실사 때 뭘 보란 말이냐”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달 중순 재무적투자자(FI)를 발표해 인수자금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며 “중도 포기설이나 경영 노하우 습득설 등은 사실과 다르며 아시아나를 인수하겠다는 게 진짜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제주항공 측은 9일 오후 세계일보에 장문의 입장을 보내왔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세계일보에 "리스 관련 자금 흐름 추정하기 위해 아시아나항공에 계약서를 요구한 것은 사실이며, 이는 실사 참여자의 당연한 자료 요청 권리"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도한 요구는 아니라고 반박했다.
특히 노선별 손익과 거점별 인력운영 현황 요구도 같은 취지라고 강조했다.
다른 후보는 상기 자료를 요구하지 않았는데 왜 애경만 자료를 요구하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자사는 항공사 운영을 통해 해당 정보가 항공사의 정상적인 경영상황 여부를 점검하기 위한 필수자료라는 걸 인식하고 있을 뿐"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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