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경기는 언제나 어려운 숙제다. 안방에선 세계 어느 나라와도 대등한 경기를 펼칠 만큼 성장한 한국축구지만 유독 원정경기만 가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상대 팀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과 낯선 환경에 우리 선수들이 기를 펴지 못한 탓이다. 대표팀이 극악 난도의 원정경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바로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리는 북한과의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경기다. 전력상 한국이 앞서지만 승리를 보장할 수는 없다. 환경이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
이번 경기에서 대표팀은 제아무리 먼 타국이라도 현장에 나타나 응원해 온 ‘붉은 악마’들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뿐 아니다. 국내에서 대표팀 경기를 고대하는 축구팬들도 이 경기를 시청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앞서 북한이 아시아축구연맹(AFC)을 통해 “월드컵 2차 예선은 예정대로 평양에서 열리며, 한국 대표팀도 H조 다른 팀들과 동등하게 대우받을 것”이라고 발표하자 대한축구협회와 통일부는 선수단 이동경로를 놓고 협의에 나섰다. 당초 선수단은 체력관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전세기를 이용한 남북직항로나 육로 이동을 요청했으나 북측이 이를 거부해 1박2일 일정으로 베이징을 거쳐 평양에 입국했다.
국까지 불허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AFC가 이메일과 공문으로 수차례 북한축구협회 측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북측은 선수단과 경기준비에 관련한 답만 보내왔다”고 밝혔다. 결국 북측은 AFC에 “선수단을 제외한 인원의 입국 승인은 북한축구협회의 결정 사안이 아니다”라는 회신을 보내왔고, 경기가 임박해 입국 비자 등 관련 준비를 할 시일이 지나 대표팀은 응원단과 취재진 없는 외로운 평양행을 택하게 됐다.
태극전사들의 모습을 TV로 지켜보기도 어려울 듯싶다. 북한이 국제방송신호를 제공해 생중계하는 방안도 협상에서 난항을 겪으며 사실상 무산된 탓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마지막까지 (축구) 중계 관련 에이전트가 (평양에) 들어가 노력했지만 사실상 중계방송이 어려워진 것으로 듣고 있다”고 밝혔다. 축구협회와 통일부는 대안으로 우리 측 대표단 숙소인 평양 고려호텔에 상황실을 설치하고 위성전화나 현지 인터넷 등 가용한 통신수단을 이용해 서울로 경기 상황을 전달할 방침이다. 이 경우 영상이나 사진 중계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주요 결과에 대한 문자중계 수준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북한은 함께 추진했던 응원단의 평양행을 거부했고, 여기에 경기 분위기와 내용을 전할 취재진의 입
일각에서는 애초 북한이 축구 중계와 응원단 방북 등에 소극적 입장을 보였을 때 3국 개최를 추진했어야 한다는 비판론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A매치 경기 관례, 지역 예선 경기 일정, 해외파 선수들의 일정 문제 등이 겹쳐 축구협회가 고민 끝에 평양 경기를 결정했고 정부는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경기 외적인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선수단은 묵묵히 경기를 준비 중이다. 당초 29년 만의 평양 원정 A매치 경기인 이 경기를 앞두고 국내외 언론이 큰 관심을 보였지만 파울루 벤투 대표팀 감독은 “월드컵 예선 경기일 뿐”이라며 경기 외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이번 경기가 친선 경기가 아닌 카타르행 카드가 걸린 월드컵 예선인 만큼 외적 의미에 얽매이는 대신 최대한 승점 3을 따내겠다는 각오다. 이번 경기가 북한 응원단의 일방적 응원뿐 아니라 인조잔디라는 낯선 환경에서 펼쳐진다는 것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원인이었다. 지난 10일 스리랑카와의 월드컵 지역 예선을 마친 뒤 “이기기 위해 준비할 것”이라며 “만약 북한 원정과 그 분위기를 두렵다고 느끼는 선수가 있다면, 그는 북한에 함께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선수들의 집중을 요구하기도 했다.
서필웅·조병욱·박유빈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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