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전격적인 사퇴로 정국이 ‘포스트 조국’으로 흘러가면서 내년 총선을 겨냥한 여야의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검찰개혁 방향을 놓고 여야의 전선이 펼쳐진 가운데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상정과 검찰 수사, 보수통합 이슈가 향후 정국을 좌우할 변수로 꼽힌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15일 열린 국정감사 중간점검회의에서 “남은 정기국회는 치유와 재생의 시간이 돼야 한다. 안보도 경제도 민생도 이제 국회가 챙겨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국당은 조 전 장관 사퇴로 확인한 민심의 분노로 패스트트랙에 오른 검찰개혁 법안과 선거제 개편안 저지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의 본회의 상정과 통과를 막고 한국당이 제시하는 검찰개혁안으로 국민 선택을 받겠다는 전략을 구상 중이다. 김명연 수석대변인은 이날 현안브리핑 후 기자들과 만나 “조 장관 사퇴로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공수처법의 정당성은 상실됐다”며 “21대 국회에서 공수처법을 논의하는 것이 민심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이날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국회선진화법을 무기로 더 과감하고 질서 있게 검찰개혁을 이뤄내겠다”고 패스트트랙에 오른 검찰개혁법안의 처리를 압박했다.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선거제 개편안 대신 검찰개혁 법안을 우선 상정하자는 민주당 제안에 대해 “여야 4당의 논의가 전제된다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할 수 있다”며 그 가능성에 문을 열어뒀다. 반면 바른미래당과 대안정치연대는 선거제 개편안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이날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수사·기소권을 다 가진 공수처가 권한 남용을 하면 어떻게 제어할 수 있나”라며 공수처의 권한남용 우려를 제기하는 등 당내 일부 이견 정리도 과제다.
여야가 검찰개혁안과 법안처리 순서 등을 놓고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이면서 16일 열리는 여야 원내 3당의 ‘2+2+2 협의체’나 문희상 국회의장이 주관하는 ‘5당 대표 정치협상회의’에서 타협안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다.
조 전 장관 사퇴로 한국당이 공세의 고삐를 쥐었지만 검찰의 패스트트랙 사건의 기소가 가시화하면 한국당의 원내 투쟁 동력이 분산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추진 과정에서 고발된 의원 111명 중 한국당 의원이 59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이 중 50명 이상이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어서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정감사 이후 의원들을 대표해 검찰에 자진출석해 해명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고발된 일부 의원은 기소에 따른 공천 불이익이나 피선거권 박탈을 우려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당이 추진할 보수통합의 방향도 범보수 진영의 ‘반문(反文)연대’ 전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조국 사퇴’ 집회에서 우파성향 기독교 단체와 함께 공동전선을 펼쳤던 한국당은 최근 연동형 비례제 도입에 대비해 우리공화당과 선거 연대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이 개혁 보수를 기치로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가운데 한국당의 보수통합 방향에 따라 구도가 새롭게 짜일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관계자는 “조 전 장관 사퇴가 준 호기를 이어가기 위해선 실력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강력한 대여 투쟁도 좋지만 공천 혁신과 당 개혁, 보수통합의 의제를 함께 이끌어갈 때 시너지가 배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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