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이슈로 떠올라
포용적 금융(금융포용)은 거래, 지불, 저축, 신용, 보험 등의 금융서비스에 누구든지 쉽고 저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고소득자와 고신용자에게 금융서비스가 집중되는 기존 금융 관행에서 벗어나 금융소외 계층까지 끌어안고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의 역할에 대한 반성 속에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포용적 금융 논의가 본격화했다. 포용적 금융은 2009년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의제로 다뤄질 정도로 글로벌 이슈로 부상했다. 2010년 서울 정상회의에서는 구체적 이행을 위한 G20 금융포용 액션플랜(FIAP)이 채택됐다.
포용적 금융에 투입되는 자금은 공적 기관을 중심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일 세계은행 산하 ‘빈곤층을 위한 금융자문 그룹(CGAP)’에 따르면 포용적 금융의 글로벌 공급 규모는 2011년 261억달러에서 2017년 420억달러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국가별 포용적 금융을 수준을 가늠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지표는 금융계좌 보유율이다. 사람들이 돈을 저축하고 지불하는 기본적인 금융활동 수단이고, 다른 금융서비스의 관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의 금융포용 데이터베이스인 글로벌 핀덱스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 세계 인구의 31%는 금융회사에 개설된 자신의 계좌가 없다. 우리나라는 5%가 계좌를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으로 여성이고, 가난하고, 어릴수록 계좌 보유 비중이 낮은 금융소외 계층으로 분류된다.
저개발국은 금융서비스 접근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포용적 금융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인도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추진하는 전 국민 계좌갖기 정책인 ‘JDY’를 통해 계좌를 대규모로 제공하고 있다. 정부보조금을 이 계좌로 자동 입금하기 때문에 성인의 35%가 정부보조금을 받기 위해 첫 계좌를 개설했다. 인도네시아는 국가금융포용전략을 수립하고 저축 확산, 신용 보증 제도와 강화, 금융 인프라와 지불 시스템 개선 등의 금융개혁을 실시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 서민금융지원체계 강화
국내에서는 정부가 금융분야 중점과제로 포용적 금융을 추진하며 금융의 사회적 책임 활동에 시동을 걸었다. 서민금융지원체계를 강화해 서민의 금융부담을 완화하고 취약채무자를 보호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기존의 고금리 대출로 어려움을 겪는 일정 신용등급 이하의 저신용자나 청년층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한 대출지원 제도가 대표적이다. 2008년 시작한 미소금융을 비롯해 새희망홀씨, 햇살론, 사잇돌 대출 등 다양한 상품이 출시됐다.
연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소멸시효 완성 채권은 소각하기도 했다. 소멸시효 완성 채권은 상환할 의무가 사라진 채권이다. 법정 시효는 5년이지만 법원의 지급명령 등으로 시효가 연장돼 연체가 시작된 지 15∼25년이 지나 소멸시효가 완성되기도 한다.
금융 이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법정 최고금리도 계속 인하하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는 지난해 연 27.9%에서 24%로 내렸다. 정부는 단계적으로 최고금리를 20%까지로 낮추겠다는 방침이다.
금융권은 정부 정책에 호응해 중금리 대출을 확대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금리와 수수료 등을 우대하는 예·적금과 대출 상품을 늘려가고 있다.
◆금융과 복지를 구분해 보완 기능해야
다만 전문가들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공급자 중심으로 서민금융상품을 만들다보니 수요자 입장에서 필요한 상품을 제때 이용하기 힘들고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고금리 대출을 일정 기간 정상적으로 상환하면 중금리 은행 대출로 바꿔주는 바꿔드림론이 채무자와 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면서 부실률이 치솟아 결국 폐지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소외 계층의 금융 접근성이 여전히 열악하다는 비판도 있다. 정부의 서민금융 공급규모는 지난해 37조5000억원까지 증가했지만 신용등급이 가장 낮은 8∼10등급에게 공급한 비중은 9.2%에 그쳤다. 급격한 최고금리 인하 정책으로 올 상반기 대부업체들이 7∼10등급 저신용자에게 대출을 승인한 비율은 4년 전의 절반 수준인 12.2%으로 뚝 떨어졌다. 최저신용 등급자들이 정책금융이나 대부업체에서마저 밀려나면 결국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게 된다.
전문가들은 금융과 복지를 구분하되 서로 보완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 차원의 재원과 범위에 한계가 있는 만큼 금융서비스에 전문성 있는 금융회사가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철 숙명여대 교수(소비자경제학)는 “서민금융 정책은 시장에서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정부가 가시적 효과에 매달려 한시적으로 공급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정부가 돌려받을 기대를 하지 않고 지원하는 복지 차원 정책과 구분해 빌려주고 돌려받는 걸 전제로 기회를 확대하면서 시장 메커니즘도 작동하도록 하는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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