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지난 21일 국군기무사령부의 '촛불 계엄령 문건'의 원본에서 자유한국당 대표인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대한 군사력 투입을 논의한 정황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임 소장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의 종합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기무사 문건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 내용을 공개했다.
이 문건은 지난해 공개한 '촛불 계엄령 문건'인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의 원본이라고 임 소장은 설명했다. 이 원본에서 기무사가 제목과 내용을 수정했다는 것이다.
임 소장은 이 문건을 통해 세 가지 주요 내용이 새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먼저 "NSC 의장인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이 NSC를 개최했다. (그 회의에서) 군사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작성한 문건이 있다"고 임 소장은 소개했다.
국회 출석에 앞서 연 기자회견에서도 "기무사는 문건에서 계엄 선포 필요성을 다루는 부분에 'NSC를 중심으로 정부부처 내 군 개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라 적시했다"며 "시기상으로도 황 대표 등 정부 주요 인사 간에 군 개입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오갔을 가능성을 충분히 의심해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임 소장은 "(군의) 서울 진입을 위해 계엄군의 이동경로를 자세히 파악한 내용도 있다"며 "성산대교부터 성수대교까지 10개 다리를 다 통제하고 톨게이트도 통제한다는 내용과 기존 문건에 나오지 않았던 신촌, 대학로, 서울대 일대에 계엄군이 주둔한다는 내용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를 구체적으로 하기 위한 포고령을 작성해 이것을 어기는 의원들을 조속히 검거해 사법처리 한다는 내용이 나와있다"고도 밝혔다.
임 소장은 또 "이 문건을 보면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 이틀 전인 3월8일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디데이를 잡고 있다"고 공개했다.
이날 임 소장이 공개한 자료는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과 그에 딸린 '참고자료' 등 두 건이다.
문건 내용을 보면 '계엄 시행 준비착수 : 탄핵심판 선고일(D)-2 일부터'라는 항목 아래 ▲ 국방부 계엄 준비 태스크포스(TF) 가동 ▲ 기무사 합동수사본부 운영 준비 등 이라고 적혀 있다.
아울러 문건에는 '계획 완성 : 3월3일 - 기본계획 및 우발계획, 사안별 세부조치 메뉴얼 등' 이라는 대목과 '시행준비 미비점 보완 : 탄핵 심판 선고일 - 계엄(합수) 기구 설치 운영, 계엄 임무수행 지정 및 임무수행 절차 등'이라는 대목도 나온다.
문건에는 단계별 조치 내용도 담겼다.
계엄 준비 절차로는 계엄 필요성 평가, 계엄 선포 요건 검토 및 선포 건의, 계엄 시행 준비 착수, 군사 대비계획 검토, 청와대(BH)·국무총리실 등 관계부처 협조, 보안조치 등 사항을 기록했다.
이후 선포와 시행, 해제 순서로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한 '계엄 선포 여건 평가 - 현재 탄핵심판 선고 이전·이후 보수·진보(종북) 세력 동향 추이, 탄핵 심판 관련 집회·시위 양상 변화 등'이라는 내용도 적혀있다.
또한 문건에는 ▲ 반정부 소요사태 전국 확산 및 과격화 양상 표출 ▲ 경찰력만으로 치안질서 유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사회질서 마비 ▲ 사이버 상 유언비어 난무, 보수 또는 진보(종북)세력에 의한 폭력투쟁 등으로 인해 행정·사법 기능 수행 제한 및 국정 마비 초래 등 '탄핵심판 신고 이후 전망' 내용도 담겼다.
이에 따라 ▲ 집회·시위 및 단체행동 차단 ▲ 계엄법 위반자 사법처리 ▲ 언론 대응 및 사이버 유언비어 차단 ▲ 국회의 일방적 계엄 해제 의결 시도에 따른 대응 등 방안도 문건에 기록했다.
문건에는 계엄 임무수행군 부대 편성 및 운용 계획도 상세히 담겨 있다.
특히 '임무 지역 투입 시기 및 방법'과 관련, 시위대의 저항이 가장 적은 야간에 진입하고 기동로 확보 후 차량·장갑차를 이용해 집회 지역을 신속히 점령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시설별 세부 부대 편성' 항목을 보면 청와대, 국방부·합참, 국회, 정부청사, 법원·검찰에 추가 투입해야 할 방호부대 규모도 세세하게 지정해놨다.
계엄 선포에 일부 정부부처가 부정적 자세를 표출할 수 있다는 상황을 가정한 통제 계획도 수립했다.
주변국과의 외교관계를 고려, 계엄 선포 전 주한 외국무관단을 소집해 소요사태의 불안정한 상황에 대한 동요 방지를 당부한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계엄 선포시에는 주한 미국대사를 초청해 미국의 계엄 협조를 요청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언론매체 및 인터넷 통제 방안'에는 '정부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보도창구 단일화 및 기자단 운용' 계획과 '시위대 습격 등에 대비한 KBS→MBC→SBS→CBS 순(順) 방송기능 유지' 내용 등이 언급됐다.
방송반, 신문반, 통신반, 외신반, 출판반, 공연반, 전시반, 음반류반, 사이버대책반 등으로 구성된 '보도검열단' 구성 계획도 세웠다.
'국회에 의한 계엄 해제 시도시 조차사항'으로는 '국회의원 대상 현행범 사법처리로 의결 정족수 미달 유도' 계획이 언급됐다.
이와 함께 계엄 군사법원 설치·운영 계획도 구체적으로 수립했다.
이 문건은 2017년 2월 생산된 것으로, 같은 해 3월에 생산된 것으로 알려진 '전시계엄 합수업무 수행방안'보다 한 달 앞선 것이라고 임 소장은 설명했다.
한편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국군기무사령부의 '촛불 계엄령 문건'의 원본을 공개한 데 대해 "앞으로 처리방안이 어떻게 되는 것이 좋은지 검토하고 논의해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이 새로 공개된 내용과 관련한 향후 조치를 묻자 "오늘 인지가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장관은 또 '이 문건에 대해 보고받은 적이 있냐'는 김 의원의 질문엔 "(보고) 받은 적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군령과 군정에 관계된 기본개념이 없는 문건이라고 생각한다"며 "작전 병력을 움직이려고 하면 합참의장의 기본적인 작전 지휘가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 이뤄질 수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도) 그렇게 계획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오늘 인지된 사안이기 때문에 (오늘) 국감이 끝나고 나면 내용을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무사가 비밀리에 계엄 계획을 세웠다고 알려진 데 대해선 "비공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도 밝혔다.
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