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의 김치는 소금물에 절인 채소를 발효시킨 음식이었다고 한다. 백김치나 동치미가 김치의 원형에 가깝다. 임진왜란 이후 한반도에 고추가 들어오며 지금의 붉은색 매운 김치로 발전했다. 우리 선조들이 언제부터 겨울나기용 김치를 담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13세기 초 고려의 문신 이규보가 지은 ‘동국이상국집’에는 ‘순무를 장에 넣어 겨울 3개월에 대비한다…’란 구절이 실려 있다. 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이때에 이미 김장 풍습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요즘처럼 배추를 통째로 절이는 김장 김치를 저장하기 시작한 때는 조선 중기로 추정된다. 잎이 여러 겹으로 겹쳐져 속을 만드는 ‘결구(結球) 배추’가 중국에서 이 땅으로 전래되면서다. 배추 김치라는 용어도 이무렵 문헌에 등장한다. 당시 김장은 민가의 최대 월동(越冬) 행사였다. 홍석모는 헌종 15년인 1849년 쓴 ‘동국세시기’에 ‘무와 배추, 마늘, 고추, 소금으로 겨울에 김치를 담그는 게 집안의 일년 계획 중 가장 중요하다’라고 기술했다.
김치를 대량으로 장기숙성하는 김장 문화는 길고 혹독한 겨울을 싱싱한 채소 없이도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개발한 지혜의 산물이다. 겨울에 마땅히 먹을 만한 채소·과일이 없었던 과거에 김장김치는 이듬해 햇채소가 나오기 전까지 서민의 거의 유일한 비타민·미네랄 보충 식품이었다. 유네스코는 2013년 김장문화를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당시 유네스코는 김장이 한국인들의 나눔과 공동체 문화를 잘 나타내고 있으며, 정체성과 소속감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 등을 등재 이유로 설명했다.
요즘 김장은 스트레스 유발자가 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예전만큼 많은 양의 김장을 하는 가정이 드물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주부들에게 김장은 고된 노동과 스트레스로 인한 힘든 가사임에 틀림없다. 대상 종가집이 최근 주부 31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4.9%는 올해는 김장을 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김장 경험이 있는 주부들에게 ‘김장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느냐’고 물었더니 75.1%가 ‘고된 노동과 김장 후유증이 우려된다’고 답했다. 요즘 같은 김장철이 되면 세대간 신경전도 벌어진다. 아내는 “꼭 해야 하느냐”고 불평하고, 어머니는 “이게 다 정성”이라고 하니, 가운데 껴서 곤란하다는 기혼 남성도 적지 않다. 먼 훗날까지 우리의 김장문화가 남아 있을까 궁금해진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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