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남 주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대표부 대사(사진)는 25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5년만에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통해 신남방정책의 거대한 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5월 차관급 인사로선 처음으로 아세안 대사로 임명돼 새로운 외교정책의 상징성을 갖게 된 그는 부임 직후부터 한·아세안 정상회의 준비에 뛰어들었다. 분초를 쪼개 아세안 손님들을 맞고 있는 임 대사를 부산 벡스코 한·아세안 정상회의 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임 대사는 “아세안 외교를 4강 외교와 동급으로 올려놓은 것은 현 정부가 처음”이라며 “아세안 국가들도 정부가 바뀌기 때문에 당장 정례화는 어렵지만 5년 후 다시 회의가 개최되도록 하는 등 꾸준히 이어지게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임 대사와의 일문일답.
―한·아세안 정상회의의 준비는 언제부터 시작됐나.
“생각의 씨앗은 정부 출범 전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현 정부는 아세안과의 관계 자체를 4강 수준으로 올려놓은 첫 정부다. 정책을 추진할 때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이름을 잘 짓는 일이다. 신남방정책이라는 이름을 통해 정책의 방향성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체감상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나.
“사실상의 신설이나 다름없게 대표부가 확대됐다. 제 얘기지만, 아세안 주재대사로 전직 차관을 임명하는 인사 실험도 했다. 그런 여러가지 조치가 한국의 의지를 아세안 국가들에도 분명하게 인식시켰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부산 벡스코 2전시장에서 열린 2019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CEO 서밋(Summit)'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문 대통령은 아세안 10개국과 모두 정상회담을 했다. 다른 다자회의 플랫폼도 있다. 한국으로 아세안 10개국을 모두 초청한 이유는.
“국가간의 관계도 인간관계와 같다. 우선 만나야 한다. 정상들이 만나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다.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결과를 이행하는 과정이 각각의 톱니로 하나의 큰 바퀴를 움직인다. 한국 포함 11개국이 그 과정에 올라탄 것이다.”
―정상회담의 결과물은.
“두 개의 문서가 채택될 것이다. 공동비전성명, 공동의장성명이다. 공동비전성명에는 방향과 철학, 공동의장성명에는 구체적인 사업이 담긴다. 이를 이행하는 것이 과제로 남을 것이다.”
―미·중도 우리 신남방정책에 관심이 많다.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간 협력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역시 중국과도 이같은 취지의 애기를 한 바 있다. 선택을 강요받는다는 생각을 할게 아니라 시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 미·중 사이 낀다고 생각하지 말고 미·중 사이에서 몸값이 올라간다고 생각해야 한다. 아세안과 우리의 친밀한 관계를 한·미, 한·중관계에서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초청했지만 북한이 거부했다. 아세안국가들은 북한과 가까운데 북핵 문제에 기여할까.
“이미 기여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도 두 차례나 아세안 국가(싱가포르, 베트남)가 개최했다. 올해 북한이 참석하지 않았지만, 아세안이 중심이 되는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는 동아시아에서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다자안보협의체다. 북한이 아세안 10개국과 모두 수교하고 있다. 북한도 아세안의 목소리에는 경청을 한다.”
―아세안아웃룩(ASEAN Outlook·아세안 관점)이 주목받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선 개방성, 투명성, 포용성, 아세안 중심성, 국제법에 대한 존중 등 아세안의 가치가 적용돼야 한다는게 핵심이다. 미·중이 자국 중심주의로 돌아서고, 다자주의는 쇠퇴하는 상황에서 한국과 아세안이 중진국으로서 힘을 합치는 매개가 될 수 있다.”
―회의 정례화 계획은.
“아세안은 10년마다 개최하는 것이 관행이다. 아세안도 정부가 바뀌니까 지금 단계에서 언제 열자 이런 약속은 못하지만, 실천력이 담보되면 당연히 회의가 또 열릴 것이다.”
―일본 등 다른 나라보다 대아세안 외교정책에서 후발주자라는 한계도 있다.
“물론 인프라에서 후발주자지만, 아세안 국가들이 다른 강대국보다 한국을 편하게 여기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우리만의 장점을 살려서 하면 극복 가능하다.
부산=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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