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이 제기된 경찰의 김기현 전 울산시장 수사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는 검찰 수사는 백원우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첩보 입수 경위를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청와대가 첩보 출처가 ‘익명의 투서’라고 주장하고 나섰지만, 경찰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진행한 수사상황을 여러 차례에 걸쳐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나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검찰은 수사상황에 대한 경찰의 청와대 보고는 공무상기밀누설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28일 경찰과 법조계에 따르면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은 백 비서관으로부터 노란 서류봉투에 담긴 첩보 문건을 전달받았다. 이 문건을 누가 작성했고, 작성을 지시한 인사가 누구인지, 백 비서관과의 관계는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김 전 시장 관련 첩보와 울산 현지 사정이 자세히 담겨 있는 첩보 보고서는 2017년 11월 초·중순쯤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산하 특별감찰반 파견 경찰(행정관)이 행정봉투에 밀봉한 채로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에게 전달했다.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낱장’ 출력물이라는 의혹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한 장은 아니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약 한 달가량이 지난 그해 12월28일 울산지방경찰청으로 해당 첩보 보고서를 내려보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에게 “형사소송법상 원본 송치가 원칙이며, (울산지검에서 서울지검으로 이관했으니) 해당 원본은 현재 검찰에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시장과 관련한 경찰청의 청와대 보고는 지난해 2월쯤부터 이뤄졌다. 김 전 시장 측근을 대상으로 한 울산지방경찰청의 압수수색(3월16일) 전에 청와대에 사전보고했다는 얘기다. 압수수색 이후 이뤄진 9차례의 경찰 보고 내용에는 압수수색과 함께 주요 피의자 소환 조사, 황운하 당시 울산지방청장의 수사지휘 회피 신청, 기소의견 송치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 3월 김 전 시장 관련 보도가 쏟아진 뒤 엄청 시끄러웠고 청와대도 상황을 알아야 하니까 사건 진행상황을 9차례 보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시장 수사가 2017년 12월 경찰청 이첩 이후 약 3개월간의 내사 이후 압수수색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이뤄진 만큼 사실상 수사 시작과 함께 청와대 보고가 이뤄진 셈이다.
하지만 경찰은 이런 논란에 대해 청와대에 사건 진행상황을 보고한 건 맞지만 어떠한 수사 지시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 고위관계자는 “청와대가 먼저 보고를 요청하지도 않았고 수사와 관련해 어떠한 지시도 없었다”며 “당시 수사대상에 울산시청 비서실장 등 고위 공무원들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보고를 한 것이다”고 말했다.
6·13 지방선거 당시 울산시장 선거는 최대 격전지였다. 김 전 시장은 경찰 수사 착수 전까지만 해도 큰 격차로 여론조사 선두를 달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운 여당 후보와 맞붙은 야당 후보에 대한 수사였던 만큼 경찰이 수사 진행상황을 여러 차례에 걸쳐 민정수석실에 보고한 것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선거 결과는 문 대통령이 “평생의 동지”라고 했던 현 송철호 울산시장이 당선됐다.
경찰이 훈령으로 삼고 있는 ‘범죄수사규칙’을 보면 ‘경찰관은 수사를 하면서 알게 된 사건관계인의 관련 비밀을 엄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검찰도 김 전 시장 관련 첩보가 청와대에서 경찰로 넘어간 데다 경찰의 청와대 보고가 수시로 이뤄진 정황을 감안해 울산지검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사건을 이송해 본격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고위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은 수사상황을 법무부에 보고하고 법무부가 대략 청와대에 보고할 뿐 검찰이 청와대에 직접 (수사상황을) 보고하는 경우는 없다”면서 “경찰이 무슨 근거에 따라 보고했는지 몰라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가 적용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이 사건을 울산지검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한 것을 두고 “이 사건 주요 혐의로 거론되는 공직선거법 못지않게 직권남용죄도 중요하게 거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형법상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할 경우 적용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이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감찰 및 수사지휘를 한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민정수석실은 5대 사정기관인 검찰·경찰·국가정보원·국세청·감사원으로부터 각종 기밀정보를 전달받아 이를 정리한 뒤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또 대통령 친인척 관리 및 공직기강 관리도 도맡고 있어 그 직무 범위가 대단히 넓은 편이다. 다만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감찰 또는 수사지휘는 민정수석실의 업무에서 벗어난다.
◆의혹마다 등장… 논란 중심에 선 백원우
지난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비위 첩보를 이첩해 의혹을 받고 있는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28일 “통상 절차에 따라 첩보를 반부패비서관실에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거론되는 사건이 잇따라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백원우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백 전 비서관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민정수석실은 수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첩보나 제보는 일선 수사기관에 이첩해 수사하도록 하는 것이 통례”라며 “반부패비서관실로 넘겼다면 이는 울산사건만을 특정해 전달한 것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사안이거나 정치적 사안이 아니라 통상적인 반부패 의심사안으로 분류, 일선 수사기관이 정밀히 살펴보도록 단순 이첩한 것 이상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경찰 수사의 청와대 보고 의혹에 대해 “없는 의혹을 만들어 논란을 벌일 것이 아니라 경찰이 청와대로부터 이첩받은 문건의 원본을 공개하면 된다”며 “우리는 제보를 단순 이첩한 이후 그 사건의 후속조치에 대해 전달받거나 보고받은 바조차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한술 더 떠 검찰의 정치적 의도를 비판했다. “이 사건으로 황운하 현 대전경찰청장이 고발된 건 벌써 1년 전 일이다. 검찰은 그간 아무 조사도 하지 않다가 황 청장의 총선 출마와 조국 전 민정수석 사건이 불거진 이후 돌연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해 이제야 수사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신속한 수사를 위해 사건을 이송해 진행했을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백 전 비서관 해명이 앞뒤가 맞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 ‘절친’인 송철호 현 울산시장이 작년 당시 여당 후보로 출마한 6·13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경쟁자인 김 전 시장 비위에 대한 첩보가 확보됐는데, 이런 ‘초특급’ 사안을 재선 출신 정치인인 백 전 비서관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상식에 맞지 않다는 얘기다. 송 시장은 백 전 비서관 직속 상관인 조 전 수석과도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백 전 비서관의 첩보 입수 경로와 관련해 일명 ‘버닝썬 사건 경찰총장’으로 불린 윤규근 총경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정부 때 백 전 비서관 아래 행정관으로 발탁된 윤 총경은 백 전 비서관 오른팔로 지칭된다”며 윤 총경을 ‘첩보 출처’로 지목하는 분위기다.
백 전 비서관은 또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감찰을 중단하는 데 관여하고 그 결과를 금융위원회에 통보해 논란을 빚고 있는 실정이다. 감찰을 주도하는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 아닌 백 전 비서관이 감찰 내용을 금융위에 통보하고 결과적으로 유 전 부시장의 구명을 도와주게 된 건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어 보인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 등을 볼 때 야권은 백 전 비서관을 중심으로 청와대가 그간 ‘사람 중심’의 업무를 했다는 비판적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선 백 전 비서관이 관여한 ‘김기현·유재수 사건’의 성격과 규모를 볼 때 조 전 수석을 넘어 현 정권 핵심 실세가 배후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백 전 비서관과 김경수 경남지사의 관계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백 전 비서관은 지난해 3월 드루킹 김동원씨가 김 지사에게 오사카 총영사로 임명해 달라고 청탁한 변호사를 면담했다가 검찰 수사를 받았으나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당시 김 지사는 “(드루킹 측으로부터) 반협박을 받고 있다”는 취지로 백 전 비서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참여정부 시절부터 청와대 비서실에서 같이 근무한 사이다.
이희경·배민영·박현준 기자 hjhk38@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