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괜스레 낭만적이 되고, 뭔가 색다른 일이 운명적으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거리에는 교회나 성당보다도 백화점이 화려한 장식으로 발길을 유혹하며 성탄 분위기를 낸다. 영화 ‘세렌디피티’는 크리스마스 시즌 화려한 백화점에서 첫 장면이 시작된다. 감독 피터 첼섬은 ‘쉘 위 댄스’, ‘꾸뻬 씨의 행복여행’처럼 삭막한 우리 일상을 낭만과 행복으로 회복시켜주는 감독이다. 영화 속 케이크점 이름인 ‘세렌디피티’는 우연한 일로 이루어진 의미 있는 결과를 뜻한다.
크리스마스 무렵, 한 백화점에서 마지막 남은 장갑을 서로 사려다 만나게 된 사라(케이트 베킨세일)와 조너선(존 쿠색)은 뭔가에 끌리듯 한눈에 반하게 되고, 들뜬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차도 마시고 공원에서 스케이트도 타면서 다른 모든 것을 잊고 서로가 운명의 짝처럼 잘 통한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각자 연인이 있는 터라 선뜻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지는 못하게 된다. 헤어진 다음 백화점에 물건을 두고 온 그들은 다시 마주치지만 내기를 건다. 운명을 굳게 믿는 사라는 서로 반대쪽 엘리베이터를 타서 같은 층을 누르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헤어질 무렵 연락처를 교환하자는 조나선에게 또 제안을 한다. 조너선에게 5달러 지폐에다 연락처를 쓰게 하고는 그것을 당장 써버리고, 자신의 연락처를 쓴 책을 책방에 팔아버리자고 한다. 만약 이 지폐와 책이 다시 서로의 손에 들어오면 자신들은 진짜 운명의 상대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 책은 바로 마르케스의 소설인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다. 53년을 기다려 이루는 운명적인 사랑이야기다. 이 책은 ‘세렌디피티’라는 영화가 단순한 멜로 영화가 아니라 인간과 운명의 관계,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것을 말해준다.
조너선은 우연히 발견하게 된 백화점 장갑 영수증으로 다른 여성과의 결혼식 전날까지 사라를 찾는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그를 매번 배반한다. 이 배반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들고 한편으로 우리 삶의 고난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 달콤한 열매가 있다는 것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 기대를 버리는 순간 인간은 살아나갈 힘을 가질 수 없다. 팽이 돌리듯 운명이 우리를 가지고 노는 것 같지만, 팽이는 결국 멈춘다. 멈출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삶을 역동적으로 성공적으로 만드는 열쇠인지 모른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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