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6선의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담담한 얼굴로 들어섰다. 살짝 잡힌 미간에서 고심의 흔적이 묻어났다. 그는 “우리 국가가 안팎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총리에 지명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혼신의 노력을 다 할 작정”이라고 지명 소감을 밝혔다.
정 후보자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 이유를 말하며 ‘화합과 통합의 정치’를 주문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국회의장을 지내며 여야 간 대화를 통해 협치를 이루려는 시도를 열심히 해왔다. 앞으로 이런저런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인 소통 노력을 펼치겠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경험과 소통능력을 십분 살려 꼬인 정국을 풀어가겠다는 취지다.
정치권에선 전직 국회의장으로 의전서열 2위였던 정 후보자가 의전서열 5위의 총리로 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정 후보자 스스로도 최근까지 “그림이 좋지 않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친 바 있다. 그는 입장을 선회한 배경에 대해 “많은 분과 대화를 하고, 나 자신도 깊은 성찰을 통해 국민에 힘이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판단으로 총리 지명을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정 후보자가 임명될 경우 전북 진안 출신으로 이낙연 국무총리에 이어 ‘호남 총리’의 대를 잇게 된다. 그는 15대 총선 때부터 전북 무주·진안·장수에서만 내리 4선을 역임했다. 19대 총선 때는 지역구를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로 옮겨 야권 유력 정치인들을 연달아 제압해 6선 고지에 올랐다. 정 후보자는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당 의장, 민주당 대표 등을 거쳐 당내 입지가 탄탄하다는 평가다. 2005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시절에는 행정도시특별법, 과거사법 등 개혁입법을 무난하게 처리해 리더십을 입증했다. 2010년 민주당 대표를 맡았을 때도 천안함 사태 여파로 야권이 불리한 상황에서도 당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해 6·2지방선거 승리를 이끄는 등 지도력을 보였다.
그는 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강기정, 오영식, 전병헌 등 소위 ‘정세균(SK)계’ 의원들이 모두 낙마하면서 세가 위축되는 등 고충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종로에서 여권 잠룡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10%포인트 이상의 격차로 꺾고 당선돼 화려하게 재도약했다. 기세를 몰아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에 오르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처리를 이끌었다.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탄핵안 통과 의사봉을 잡은 입법부 수장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강점으로는 ‘온화하고 탈권위적인 성품’과 ‘경제 전문성’이 꼽힌다. 국회 출입 기자들의 투표로 선정되는 신사적인 의원에게 수여하는 ‘백봉신사상’을 무려 15차례 받아 정치권에선 ‘미스터 스마일’로 불린다. 여기에 쌍용그룹에 입사해 상무이사까지 지내는 등 17년간 샐러리맨의 길을 걸었고, 참여정부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까지 역임해 풍부한 경제정책 경험도 큰 자산이다. 그는 부인 최혜경(67)씨와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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