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일본의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3차전. 겨울밤 쌀쌀한 추위를 녹이는 관중들의 뜨거운 응원이 90분 내내 경기장에 울려퍼졌다. 지난 10일 개막한 이 대회는 일요일 펼쳐졌던 한중전이 8000여명의 관중만 기록했을 정도로 축구팬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손흥민, 황의조 등 유럽파 스타들이 소집되지 않은데다 이렇다할 월드컵 등 대형 이벤트를 앞둔 시기도 아니라 흥행부진은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그러나, 이날만은 전혀 분위기가 달랐다. 중국전보다 4배 가까이 많은 3만여명의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아 경기 시작 한시간여전부터 응원전을 펼치며 태극전사들에게 힘을 보탰다. 한·일 관계가 냉랭한 이 때에 축구팬들이 대표팀 선수들에게 원하는 것은 명확했다. 일본의 콧대를 찍어누르는 승리만이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결국, 태극전사들은 경기장을 찾은 축구팬들을 만족시켰다. 이날 결과는 1-0 한국의 승리. 점수로는 접전이었지만 경기 내용은 시원했다. 무엇보다 초반 보여준 선수들의 투혼과 집중력이 인상적이었다. 경기 시작부터 ‘일본에게 지지않겠다’는 선수들의 의지가 플레이에서 배어나왔고, 덕분에 일본을 기세에서 누를 수 있었다. 이 대회 전부터 “한일전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고 여러번 밝혔던 파울루 벤투 감독도 이 경기만큼은 조금 특별하게 운영했다. 중국전에서 시도해 좋은 평가를 받았던 롱패스와 전진패스의 비중을 더욱 늘린 것. 기세에서 앞선 선수들은 벤투 감독의 의도에 부응해 과감하고 도전적인 플레이를 여러번 시도했고, 이는 좋은 득점 기회로 연결됐다.
아쉽게도 이중 두 번이 골대의 불운으로 연결됐다. 전반 9분 주세종(29·FC서울)의 오른쪽 코너킥을 받아 날린 김민재(23·베이징 궈안)의 헤딩슛이 크로스바를 때렸고, 전반 25분에도 주세종의 코너킥에 이은 김영권(29·감바 오사카)의 헤딩슛이 왼쪽 골대를 맞고 나갔다. 관중들은 아쉬움에 탄식했지만, 아쉬움은 이내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3분 뒤인 전반 28분 황인범(23·밴쿠버)의 골이 터졌기 때문이다. 그는 김진수(27·전북)가 왼쪽 측면을 돌파한 뒤 내준 패스를 페널티지역 왼쪽 부근에서 잡아 강력한 왼발 터닝슛으로 골로 연결했다. 홍콩과의 1차전 오른발 프리킥에 이은 황인범의 이번 대회 두 번째 득점으로 세트피스로만 득점했던 벤투호가 이 대회에서 처음 터뜨린 필드골이기도 했다.
과감한 공격과 빠른 압박으로 인상적인 전반전을 보낸 한국은 후반에는 수비 비중을 다소 높이며 승리 굳히기에 나섰다. 결국, 만회를 위해 나선 일본의 공세를 45분동안 유연하게 넘겨내며 승리를 완성했다. 벤투 감독은 경기 뒤 “상대에게 제대로 된 골 찬스를 내주지 않고, 우리는 여러번 기회를 잡는 등 완벽한 경기였다”고 평가했다.
이로써 벤투호는 이번 대회 무실점 3연승(승점 9)으로 일본(2승 1패·승점 6)을 따돌리고 우승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다. 한국은 2015년과 2017년 대회에 이어 3연패뿐만 아니라 통산 5번째 정상에 오르며 역대 최다 우승을 이어갔다. 개최국이 매번 우승을 놓치던 이 대회 징크스도 처음으로 깼다. 홍콩전, 일본전 결승골의 주인공 황인범은 대회 MVP로 선정됐다. 대회 우승과 함께 대표팀은 카타르월드컵 지역예선 과정에서 다소 침체됐던 팀 분위기를 일신하고, 김태환(30), 김인성(30·이상 울산), 이영재(25·강원) 등 유럽파들을 뒷받침할 K리거 자원들을 다수 발굴해내는 등 의미있는 소득도 함께 거뒀다.
부산=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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