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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무기 사야 방위비 협상도 잘 풀리나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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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28 10:26:15 수정 : 2019-12-29 00: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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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국의 가장 큰 군사장비 구매국 중 하나이고, 우리는 매우 잘 협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한미 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등장하는 멘트가 무기 구매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방국들을 대상으로 미국제 무기 도입을 강조해왔고, 사우디를 비롯한 국가들은 ‘통 큰 구매’로 화답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미국제 무기 구매를 여러 차례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대응해왔다.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의 미국 수석대표인 제임스 드하트 국무부 선임보좌관(오른쪽)이 1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영종도=연합뉴스

이같은 추세는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 47억달러(약 5조4700억원)에 달하는 분담금을 요구하자 한국은 미국제 무기 구매 확대 카드로 대응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방위비분담금 대폭 인상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제 무기 도입을 늘리는 것이 되려 한미 동맹 증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방위비 협상 때마다 무기 산다고 해야하나”

 

방위비분담금 협상 카드로 미국제 무기 구매가 처음 거론됐을 때부터 군 안팎에서는 “적절치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가장 큰 비판은 “앞으로 방위비분담금 협상할 때마다 미국 무기를 사야하느냐”는 것이다. 미국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SMA 협상과정에서 방위비분담금을 상당 수준 인상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제 무기 구매 카드를 뽑아든다면, 추후 협상에서 미국의 대폭 인상요구→무기 구매 확대 약속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될 우려가 있다.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협상 대사가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브리핑룸에서 제임스 드하트 미국 국무부 선임보좌관과의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정(SMA) 협상 결과를 브리핑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기 구매는 운용 주체인 군이 필요로 하는 장비를 조달한다는 원칙에 근거한다. 법률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면밀한 검토와 분석을 통해 타당성을 검증하고, 판매자와 협상을 벌여 구매 조건을 확정한 뒤 도입을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방위비분담금 협상 카드로 미국제 무기 구매 확대를 사용하게 되면, 공정한 경쟁과 투명한 행정에 입각한 국방획득체계에 정치적 결정이라는 요소가 추가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국방획득체계의 안정성을 뒤흔들 위험이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정무적 판단’을 이유로 미국 보잉 F-15SE 대신 록히드마틴 F-35A를 차기전투기(F-X)사업 대상 기종으로 선정한 것을 두고 ‘비리’ 논란이 지속됐던 전례를 고려해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법과 원칙에 의한 무기 도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비리가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지적했다.

 

“구매할 무기가 마땅치 않다”는 현실적 문제도 있다. 노무현정부 시절부터 추진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준비하고자 한국군은 미국에서 많은 무기를 구매했다.

 

E-737 조기경보통제기, F-15K 전투기, 이지스 전투체계, 패트리엇 지대공미사일, F-35A 전투기, C-130J 수송기,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AH-64E 공격헬기 등을 도입하는데 소요된 비용은 수십조원으로 추산된다. 

한미 해병대원들이 연합 지휘소 훈련에 참가해 사전에 설정된 작전계획을 점검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거액을 들여 미국에서 무기를 도입해도 문제는 남는다. 후속군수지원 비용이 그것이다. 무기를 30년 이상 운용하면서 정비 및 운영유지를 위해 막대한 예산이 지출된다. 특히 전자장비 비중이 높아진 현대 무기체계에서 운영유지비는 ‘부르는 게 값’이다. 

 

국산 무기를 사용하면 그나마 운영유지비가 줄어들지만, 미국에서 도입하면 비싼 값을 치르고도 원하는 만큼의 서비스를 받기가 쉽지 않다. 수천억원의 방위비분담금을 아끼기 위해 수조원의 기회비용을 희생하는 셈이다.

 

국내 방위산업 퇴보 우려도 제기된다. 방위산업이 발달하면서 자체 생산이 가능한 무기도 증가 추세다. 해외에서 성능을 인정받아 수출까지 이뤄지는 ‘명품 무기’도 있을 정도다.

 

사우디처럼 국내 제조 기반이 없다면 미국제 무기 구매 확대가 가능하나, 국내 조달이 가능한  품목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추가 구매할만한 미국 무기는 많지 않다. 굳이 도입한다 해도 국산 무기개발에 투입될 예산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지금 당장의 위기만 넘기면 된다”는 식의 근시안적 정책을 추진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주한미군이 경북 성주군 소성리 기지에 반입한 사드 발사대를 설치, 점검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역사는 사라지고 비즈니스만 남았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와 무기 구매 등이 한미동맹 현안에서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에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미 양국이 70년을 이어온 동맹의 역사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글로벌 전략에서 한국과의 동맹은 유럽, 일본 등에 비해 공헌도나 비중 등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을 잇는 동맹의 역사는 다른 나라보다 깊다.

 

한미동맹을 표현할 때 자주 쓰이는 표현이 ‘혈맹’이다. 전쟁터에서 함께 피를 흘리며 싸웠던 전우라는 뜻이다. 

 

그만큼 희생도 많았다. 6.25 전쟁 당시 한국군 전사자는 13만7000여명, 미군 전사자는 3만3000여명에 달했다. 미군 장병들은 고향에서 수만㎞ 떨어진, 지명조차 낯선 땅에서 혈투를 벌이다 숨졌다. 그들 중 일부는 휴전이 이뤄진 지 60여년이 지났으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상태다. 미국의 파병요청으로 참가한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 5000여명이 숨졌다.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는 국가들 중 대규모 전쟁을 두 번이나 함께 치른 역사를 지닌 나라는 유럽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의 글로벌 전략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평가되는 일본조차도 이같은 역사는 없다.

 

한미 관계가 수십년 동안 부침을 거듭해왔지만, 결정적인 파국으로 치닫지 않은 것은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해 양측간에 형성된 역사의식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1차 북미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북한이 송환한 6.25 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들이 유엔기에 싸인 채 수송기에 적재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들어선 직후 한미동맹에서는 역사의식 대신 비즈니스 거래가 강조되고 있다.

 

비즈니스 거래에 기반한 관계는 위험하다. 이익이 되지 않으면 끊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이해 득실을 따지기보다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마음이 서로 통하게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한미동맹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에 더 많은 재정적 부담을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제 무기 구매 등을 거론하며 대응하는 한국 정부의 의중이 맞물리는 모양새다. 수십년 동안 공유했던 가치 대신 주고받기식 거래가 부각되면서 동맹을 떠받치던 역사의식과 가치관이 약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거래의 기술’을 발휘한다고 해서 우리 정부마저 똑같이 대응한다면, 동맹의 역사와 가치는 어디서도 설 자리가 없다.

 

역사와 가치가 사라진다면 미국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묘지와 부산 유엔군묘지에 묻힌 6.25전쟁 참전 미군 전사자들, 국립현충원에 잠들어있는 베트남전쟁 참전 장병들의 희생은 의미를 잃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된다. 산 사람의 기억에서 죽은 사람의 희생이 잊혀지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  

한미 공병대원들이 함께 부교를 설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언급이 “같이 갑시다”다. 이해관계로 엮인 사람들은 먼 길을 같이 갈 수 없다.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추억이 있어야 가능하다. 중국은 ‘혈맹’의 가치를 기반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대북 제재에 직면한 북한을 물밑에서 지원하고 있다.

 

반면 한미는 무기 구매나 방위비분담금 등 이해관계를 강조하는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동맹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각이 점증하는 상태다. 동맹의 역사와 가치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거래의 기술’은 국제정치나 안보 분야가 아닌, 통상 분야에서 활용해야 할 기술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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