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잔치 음식
맞벌이하시던 부모님은 외가에 나를 맡기면서 유년시절의 상당 부분은 할머니 손에 자랐다. 모임 때면 대가족이던 외가에 수십명이 우르르 모이면서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외할머니의 푸짐한 잔칫상이 차려졌다. 광주리에 전, 꼬치, 편육, 잡채, 갈비 찜, 조기구이를 펼쳐 놓고 마치 뷔페처럼 배부르게 먹던 기억이 난다.
그중 조갯살과 야채를 넣고 요리한 ‘대합 찜’과 ‘문어 찜’이 가장 기억이 남는다. 가족들끼리 둘러앉아 속 반죽을 대합 껍데기에 채워 광주리 가득 쌓아 놓는 모습은 맛에 대한 상상력을 극대화시켰었다. 커다란 문어 다리가 찜 솥에서 나올 때면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과 그걸 번쩍 들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명절이나 모임 때마다 먹었던 외할머니 음식은 진하고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그런 음식들이 됐으니 많이 아쉽다.
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자매들 중 유독 외할머니의 음식과 가장 많이 닮았다. 어머니의 음식을 먹으면 어린 시절 익숙했던 외할머니의 음식들이 떠오르는 걸 보면 ‘손맛’은 대를 통해 전해지나 보다.
#잔치의 기원은 제의
한국인의 잔치 음식은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로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 음식은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먹어보지 못했던 몇 백 년 전의 음식들보다는 할머니가 해주신 따뜻한 음식들이 지금의 잔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잔치의 기원은 제의와 관련 있다. 경건한 굿이나 의식 절차 같은 것을 진행한 뒤 먹고 마시며 노래하는 잔치가 펼쳐져 즐거운 축제로 마무리됐다. 지금의 잔치는 기쁜 일이 있는 날에 음식을 차려 놓고 여러 사람이 즐겁게 즐기는 뜻으로 많이 표현된다. 전통 결혼식이나 회갑연 같은 경사 자리에 가면 과일이나 건과류, 전과류, 편육, 어류, 건어물류 등 높게 쌓여 있는 음식상을 볼 수 있다. 음식을 높이 쌓아서 차린 상이라고 해서 ‘고배상’ 또는 바라보는 상이라고 해서 ‘망상’이라고 한다.
제의용이 아닌 경사용 전통적인 잔칫상에 올라가는 음식들은 아마 지금은 우리가 생각하는 음식들과는 제법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잔치라 함은 초대받는 사람이나 그걸 준비하는 사람에게나 축복이라, 초대를 할 수 있는 위치와 재력이 있어야 가능했다. 따라서 신선로 같은 궁중 요리나 양반들이 먹던 음식 수준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혼이나 회갑연은 누구에게나 축복이며 행복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서민들이 함께 먹고 즐긴 음식들은 지금도 우리들에게도 잘 전해지고 있다. 돼지의 대창을 쓰는 함경도 ‘아바이 순대’나 밀가루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의 무병장수를 기원했던 ‘잔치 국수’, 조선시대 당면이 없는 ‘잡채’ 같은 것들은 처음부터 쉽게 접할 수 있는 잔치 음식들은 아니었지만 시대가 흐르고 식생활 수준이 높아진 지금 같은 시대엔 제법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음식들이 됐다.
■화이트 발사믹에 글레이징한 문어다리 요리
■재료
문어 다리 2개, 화이트 발사믹 식초 1큰술, 설탕 1/2큰술, 무염 버터 1큰술, 물 1큰술, 문어 삶을 물 1L, 화이트와인 1큰술, 소금 1작은술 , 건바질 1작은술, 마늘 2톨, 양파1/4개, 문어 손질용 밀가루 1큰술, 청주 또는 소주 반컵
■만들기
①문어 다리는 밀가루에 버무려 준 후 흐르는 깨끗한 물에 씻어준다. ②물 1L에 소금, 건바질, 마늘, 양파를 넣고 15분간 끓여 준 후 화이트 와인을 넣어준다. ③문어다리를 끓는 물에 넣고 3~5분간 익혀준다. ④문어다리를 꺼내 식혀 준 후 일정하게 칼집을 넣어준다. ⑤물과 발사믹 식초를 섞고 설탕을 녹여 준 후 설탕이 녹으면 버터를 넣어 살짝 걸쭉한 농도가 될 때까지 졸여준다. ⑥데친 문어를 넣고 광택이 날 때까지 문어를 버무려 준다. 에피타이저로 준비하면 좋다.
오스테리아 주연·트라토리아 오늘 김동기 오너셰프 payche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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