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착취물이 공유되던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 대화방의 이용자 일부가 반성은커녕 검거된 성범죄자들을 추모하는 방을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24일 세계일보 취재 결과 ‘합동 추모방’ 등의 이름으로 개설된 텔레그램 대화방의 참가자는 이날 기준 수백 명에 달했다. 전날 개설된 한 대화방 공지에는 ‘이곳은 경찰에 검거된 것으로 추정되는 소위 ‘네임드(유명 이용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라는 설명과 함께 검거된 성범죄자들의 앞날에 복이 가득하길 바란다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개설 이후 대화방에는 애도를 뜻하는 흰 국화 사진과 함께 추모의 뜻을 담은 글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피까츄방’, ‘댕탕이방’ 등 성착취 영상이 공유된 ‘n번방’(1∼8번까지 존재)의 아류방을 운영하던 운영자들부터 성착취물 유통 관여자들에 이르기까지, 검거된 것으로 추정된 이들의 닉네임이 거론되면 추모 대화가 잇따르는 식이었다.
대화방 참가자들은 “그는 스무 개 이상의 방을 창설하며 텔린이(텔레그램+어린이·신참 이용자들)들의 희망이 되었다”, “그들은 텔레그램에서 (성착취물을 공유하며)여가시간을 함께 해준 좋은 선지자들이었다”, “그는 2600만 텔레그램인들의 빛이었다”는 식으로 성착취범을 영웅시하거나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 돌아오는 날 기쁘게 맞아주겠다”, “다음 생엔 대한민국이 아닌 곳에서 태어나 텔레그램 성인물을 마음껏 즐기라”는 식으로 검거를 안타까워하는 글을 올렸다. 추모의 글을 올리는 틈틈이 ‘n번방’, ‘박사방’과 기타 파생방에 공유된 성착취물을 구한다는 이들도 나타났다.
텔레그램 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행위는 텔레그램 밖의 온라인 공간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포털사이트 댓글창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텔레그램 성범죄 피해자의 행실 등을 문제 삼는 ‘2차 가해’가 이뤄졌다. 지속적으로 2차 가해 글을 수집해온 익명의 제보자에 따르면 일부 누리꾼들은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나섰다 피해를 입었다거나 피해자들도 좋아서 동참했을 거라는 식의 명백한 2차 가해를 일삼았다. ‘n번방’과 ‘박사방’의 영상물을 찾거나 “한순간의 실수일 뿐, 텔레그램 성범죄가 이렇게까지 욕먹을 일인지 납득이 안 간다”는 글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수사, 처벌과 함께 온라인 성착취물 수요 자체를 줄이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성착취물 제작과 공유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2차 가해에도 죄책감이 없는 수요층이 유지되는 한 제2의 ‘박사’(박사방 운영자)나 ‘갓갓’(n번방 개설자)은 언제든 다시 활개를 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현 상황에서 수사기관 등은 이미 피해가 발생한 후에 가해자를 처벌하는 사후적 처분만을 할 수 있을 뿐”이라며 “미성년자, 여성을 대상으로 한 왜곡된 성욕과 훔쳐보기 욕구를 뿌리 뽑으려는 사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의 텔레그램 성범죄 수사에 속도가 붙자 텔레그램에서는 이용자 탈퇴가 줄을 잇고 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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