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강사 A씨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수업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법원의 개인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그는 매달 변제해야 하는 금액이 정해져 있지만, 현재로선 매달 변제액을 마련하기가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A씨는 “정규직이 아니라서 수입도 고정적이지 않다”며 “앞으로 소득이 다시 늘려면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개인회생 채무자 B씨도 최근 급격히 소득이 줄면서 또다시 빚을 져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조금씩 내왔던 주택청약마저 해약해 미납 변제액을 납부하고, 저신용자 대상 정부 지원 대출까지 받는 방안을 고민한 B씨는 “(개인회생으로) 3년 넘게 빚만 갚았는데, 다시 빚의 늪으로 들어가는 건 아닐까 걱정이다”라고 전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가계소득이 급감하면서 개인회생 채무자와 같은 한계 채무자들이 회생에 실패하거나 또다시 빚의 굴레에 빠지게 될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앞으로 개인회생·파산 신청자들이 급증할 것으로도 예상되면서 이들에 대한 법원의 유연한 판단이 필요한 때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14일 법원에 따르면 지난 2월 개인회생 사건 접수 건수는 7388건으로 전년 동월(6719건)보다 9.9%(669건) 증가했다. 개인파산 사건 접수는 3715건으로 지난해(3115건)보다 19.2%(600건) 늘었다. 법원이 맡아 진행하는 개인회생제도는 갚기 힘든 빚으로 극심한 어려움에 시달리는 개인채무자 중 지속적 수입이 기대되는 자에 한해 3∼5년간 매달 일정 금액을 변제하면 나머지 채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절차를 뜻한다. 개인파산은 채무자가 자신의 재산으로 모든 채무를 변제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경우, 채무 정리를 위해 스스로 파산신청을 하는 경우를 말한다.
개인회생·파산제도는 채무자들이 경제적으로 재기·갱생할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현 코로나19 사태에서는 그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급감하는 소득으로 매달 정해진 변제액을 채우지 못해 회생에 실패하거나 또다시 빚을 내 변제액을 채우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지예 금융정의연대 사무국장은 “한계에 놓인 채무자들은 당장에는 적금과 보험을 깨거나 카드 대출 등으로 버틸 수는 있겠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경제상황이 더욱 악화하면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개인회생·파산을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미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채무자들 또한 소득이 줄어들어 어쩔 수 없이 채무변제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에서 채무자의 효율적 회생이라는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법원의 적극적이고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날 금융정의연대와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개인회생 채무자에 대한 ‘변제계획불수행’ 기준 완화와 ‘변제계획변경신청’에 대한 신속한 판단, 파산 절차의 엄격성 완화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대법원 등에 제출했다. 개인회생 채무자들이 3개월 이상 변제를 지체할 경우, 변제계획을 수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폐지 결정 절차에 나서는 현행 지침 등에 대한 기준을 완화하고, 채무자가 코로나19로 인한 소득감소로 변제계획 변경안을 제출하면 이를 적극적으로 인가하라는 것이다.
백주선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회장은 “개인회생은 (채무자의) 소득이 일정하게 유지돼야 하지만, 현재로선 쉽지 않기 때문에 파산 및 면책이 즉시 이뤄지는 개인파산이 활성화되는 게 필요한 상황”이라며 “법 개정은 시간이 많이 필요한 데다 법이 바뀌더라도 실제 적용하는 것은 법원의 몫이기 때문에 법원이 어떤 입장에서 제도를 운용하느냐에 따라 상당히 많은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회생법원 한 관계자는 “(변제계획불수행 기준을) 완화해서 개인회생절차가 가능하면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공감대는 (내부적으로)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