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미국산 무기도입 예산을 삭감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이 문제가 갈등을 겪고 있는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에 어떤 작용을 할지 주목된다.
갈등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지, 아니면 분담금 협상 타결의 전주곡이 될지는 미지수이나 대미 압박에 효과가 있을 것이란 분석은 작지 않다.
정부는 1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긴급재난지원금 마련을 위해 총 7조6000억원 규모의 2차 추경을 편성했다.
임시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추경안에 따라 줄어든 국방비는 9047억원. 정부부처 예산 중 가장 큰 삭감액이다. 전력운영비에서 1927억원, 방위력개선비에서 7120억원의 예산이 줄게 된다. 방위력개선비는 대부분 무기를 사는데 들어가는 돈인데 F-35A 스텔스전투기(3000억원), 해상작전헬기(2000억 원), 광개토-Ⅲ 이지스함(1000억 원) 도입 비용 등이 삭감됐다.
앞서 정부는 2014년 7조4000억원을 들여 F-35A 40대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까지 13대가 국내에 들어왔고 올해 26대, 내년까지 총 40대가 도입된다.
해상작전헬기 사업은 12대의 신형 헬기를 도입하는 것으로, 국외시험 평가 절차를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경쟁 기종은 영국산 레오나르도의 AW-159 ‘와일드 캣’과 미국산 록히드마틴의 MH-60R ‘시호크’가 경합 중이다.
김일동 국방부 전력정책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일단은 국내 방위사업 육성 및 보호 차원에서 국내에서 진행되는 사업들은 빠져 있고 모두 해외 도입 사업을 중심으로 감액했다”며 “F-35A와 이지스 전투체계 도입은 올해 내기로 한 일부 금액을 내년에 지불하는 방안을 두고 미정부와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매년 약정된 무기도입 비용을 미정부에 건네고 미국 내 제조업체는 사업추진 경과에 따라 미정부에서 대금을 받는데, 이를 미루겠다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기분 좋을 리 만무하다. 이를 의식한 듯 김 정책관은 “이번 감액 추경으로 인해서 어떤 장비의 도입 시기가 늦어진다든가 전력화가 지연되는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정부 방침은 코로나19에 따른 재난기금 마련을 내세웠지만 이면에 미국과의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이 담겼다는 평가다.
군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 정부는 방위비 협상에서 미국의 과도한 인상 요구에 대응해 미국산 무기구매 등 여러 측면에서 한미동맹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설득해왔다”면서 ”당장 급하지 않은 무기도입을 늦추는 것을 두고, 그것도 코로나19에 따른 재난기금 마련이라는데 미국이 트집을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 색깔이면 보복의 여지가 없지 않다”면서도 “무기구매 예산 삭감 발표는 분담금을 올리는 대신 무기구매를 줄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미국 측에 전하며 방위비 협상을 압박하는 효과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6일(현지시간)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문재인 정부가 (협상에서) 단호하게 나선 것”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방위비분담금의 과도한 증액을 계속 고수한다면, 한국은 미국산 무기도입사업 예산 삭감 규모를 확대할 것이고, 이로 인해 미국 내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란 점을 시사했다”고 분석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북한 분석관 출신인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도 방송에서 “한국 정부의 국방비 삭감이 간접적으로 방위비분담금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될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월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인상 압력 때문에 한국 해군에 대한 영국 측의 헬리콥터 판매 계획이 좌절될 것 같다”고 보도한 바 있다.
여기에 4·15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둠에 따라 지난 1일부터 무급휴직에 들어간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를 위한 특별법 제정이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별법 제정은 미국 정부가 한국인 직원의 생계를 방위비분담금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국방부 관계자는 17일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 (국방부 내) 관련 부서가 관계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병진 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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