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 등 민간인을 사찰하고 자체 예산으로 세월호와 관련한 부정적 내용의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27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의 세월호 유가족 등 민간인 사찰 및 여론조작 의혹 등을 조사한 결과 국정원법상 직권남용금지 위반 등의 개연성이 있어 검찰에 수사를 요청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조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참사 당시 단식 투쟁을 하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병원에 입원하자 국정원 직원이 해당 병원장 등을 만나 김씨의 건강 상태와 각종 신상을 조사해 보고했다고 한다.
특조위 관계자는 “국정원 작성 보고서와 직원 진술조사, 증거로 보전됐던 해당 병원 폐쇄회로(CC)TV 영상 자료 등 다수 근거 자료를 조사해 특정했다”며 “신상 관련 보고서가 올라온 뒤 ‘이혼 뒤 외면’, ‘아빠의 자격’ 등 김씨 신상과 관련된 내용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언론에서 다뤄졌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이 작성한 세월호 참사 관련 동향 보고서에는 ‘여성들이 속옷을 빨아 입을 수가 없어 며칠째 입고 있다고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 실정’, ‘진도 실내체육관에는 희생자 가족 1명(강경 성향)이 내려와 실종자 가족들을 선동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팽목항에 내려와 있는 희생자 가족 1명(온건 성향)’ 등 내용이 포함됐다.
이런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정보 수집 행위는 세월호 이슈가 장기화하고 당시 박근혜정권의 무능에 비판적인 여론이 형성되자 국정원이 세월호 유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는 한편 정국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특조위의 판단이다.
국정원은 또 자체 예산을 들여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내용의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 ‘일베’ 사이트 등에 게시해 여론을 확산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정원이 청와대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보수(건전) 세력(언론)을 통한 맞대응’, ‘침체된 사회 분위기 쇄신을 위한 일상 복귀 분위기 조성’ 등 내용이 담겼다고 특조위는 덧붙였다.
특조위 관계자는 “국정원의 이같은 행위가 국정원법상 직권남용 금지 행위라고 판단해 당시 활동하던 국정원 현장 직원 5명을 수사해 달라고 검찰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세월호 유족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미래통합당 4·15총선 국회의원 후보자가 당에서 제명 처분을 받고,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서울 등 수도권 일대에서 통합당 후보들이 참패하기도 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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