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 사격은 없었습니다.”
27일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한 전두환(89) 전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헬기 사격을 하지 않았다며 헬기 기총 사격을 전면 부인했다.
전씨는 이날 오후 2시쯤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재판에서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전씨는 재판에서 검찰의 공소장 낭독 후 판사가 공소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묻자 “만약에 헬기에서 사격을 했다면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며 “그런 무모한 짓을 대한민국의 헬기 사격수인 중위나 대위가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다만, 검찰이 선교사 피터슨 목사가 헬기 사격과 관련한 사진을 제출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않고 인상만 찌푸렸다.
전씨는 재판 중에 판사나 검사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헬기 사격 부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부인했다. 지난해 3월 열린 재판에서와 똑같은 태도로 일관했다. 그는 당시 변호인을 통해 “헬기 기총 소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전씨는 법정에서 청각 보조장치를 한 채 부인 이순자씨의 도움을 받아 생년월일과 직업, 거주지 등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에 응했다. 이후 팔짱을 긴 채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재판은 1시간 20분 만에 변호인 요청으로 휴정 후 재개됐다.
전씨의 이번 광주 재판 참석은 두 번째다. 그는 2017년 4월 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던 만큼 조비오 신부가 헬기사격을 목격했다는 것은 파렴치한 거짓말이다’고 주장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2018년 5월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지난해 3월 한 차례 재판에 참석했지만, 재판부가 바뀌면서 다시 소환장을 받고 두 번째 인정신문을 위해 출석했다. 이날 낮 12시 20분쯤 법원에 도착한 전씨는 “왜 책임지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어 “왜 반성하지 않느냐”는 등의 질문 세례가 쏟아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앞만 보고 걸었다.
전씨는 법원 후문 승용차에서 내려 6m가량을 경호원의 손을 잡고 법원에 들어갔으나, 걷는 데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회색 넥타이에 마스크를 착용한 그는 이날 오전 8시25분쯤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부인 이씨와 함께 출발했다. 4시간쯤 지나 광주지법에 도착하자 법정 안팎에서 전씨의 처벌을 촉구하는 5월 단체들의 항의가 잇따랐다. 흰 소복을 입은 오월어머니회 회원 10여명은 법원 후문에서 “전두환은 5·18 진실을 밝혀라”라고 쓴 손 피켓을 들고 항의했다. 이들은 또 오월의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주 출정곡’ 등을 부르며 전 전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했다. 5월단체는 이날 죄수복을 입은 전씨가 무릎을 꿇고 사슬에 묶여있는 ‘전두환 치욕 동상’을 법원 정문 앞에 설치했다. 5월유족과 시민들은 동상을 때리면서 그동안 쌓인 울분을 토해냈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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