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올해 말까지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를 위한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세저항, 보험료 징수 체계 전면 개편 등 전 국민이 고용보험 적용을 받기까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 장관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고용보험 가입이 누락된 소규모 사업장의 임시·일용 노동자, 경력단절여성·청년 미취업자 등 구직자, 나날이 증가하는 특수고용노동자(특고)·프리랜서 등 새로운 고용형태의 노동자들은 고용보험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필요성이 높아진 ‘경제 방역’의 일환이다. 그동안 고용보험은 사실상 국내 유일한 고용안전망이었지만, 전체 취업자 2656만명 중 절반만이 가입돼 있다. 국책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공무원과 고용보험에 가입된 임금노동자는 54.8%로, 나머지 자영업자·특고·프리랜서 등은 실직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상태다.
전 국민 고용보험을 위한 첫발은 이미 내디뎌진 상태다. 전날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프리랜서가 70% 이상인 예술인을 고용보험 당연가입 대상으로 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다. 당초 적용 대상으로 논의됐던 특고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논의 시간 부족으로 21대 국회에서 재논의하기로 했다.
정부의 두 번째 발걸음은 현재 산업재해보험 가입이 가능한 9개 직종을 고용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하다는 것은 보험료를 공동 부담할 사업주를 특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임금노동자의 고용보험료는 노동자와 사업주가 절반씩 부담하는데, 정부는 특고직에도 같은 방침을 적용할 예정이다.
이 장관도 브리핑에서 “올해 중에 특고의 고용보험 적용 법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에 따라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9개 특고직은 총 77만명(2018년 기준)으로 보험설계사, 건설기계 운전원,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택배 기사, 퀵서비스 기사, 대출 모집인, 신용카드 회원 모집인, 대리운전 기사 등이다.
전문가들은 특고 9개 직종까지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구상이 현 정부 임기 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9개 특고직의 70%를 차지하는 보험설계사 업계가 보험료 부담, 소득 공개 등을 이유로 반발하고 있지만, 여당인 민주당이 21대 총선에서 전례 없는 압승을 거두면서 개혁 동력이 마련됐다는 분석이다.
여권 내에서는 전 국민 고용보험을 ‘완성’하기 위해 보험료 징수체계를 전면 개편하는 구상도 제시되고 있다. 임금근로자와 사업주가 반반씩 보험료를 부담하는 현 체계를, 소득을 기준으로 동일한 세율을 부과해 보험료를 걷는 방식이다.
이 장관도 이날 브리핑에서 보험료 징수 체계를 전면 개편할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사업장 중심의 적용·징수 체계를 개편하고 이를 위한 경제활동 확인체계가 구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이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제3차 고용정책심의회에서는 향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고용안전망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전체 취업자의 소득정보를 구축하고 고용보험 적용·징수체계 개편을 위한 범정부 추진체계를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나머지 자영업자, 초단기·일일 노동자를 고용보험 의무대상에 포함하려면 먼 길을 가야 한다. 바닥을 기는 자영업자 고용보험 가입률이 이를 증명한다. 자영업자는 2012년부터 고용보험 임의가입이 가능하지만, 지난 3월 기준 고용보험에 가입한 1인 자영업자는 1만5549명으로, 전체 1인 자영업자(405만명)의 0.38% 수준이다. 자영업자들은 고용보험에 가입하면 소득과 재산이 노출돼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등의 부담이 늘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어 조세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전문가들은 전 국민 고용보험의 ‘단계적 완성’을 위해선 보험료 체계를 근로·사업소득 과세로 개편하는 대신, 실업부조 등 2차 고용안전망을 넓히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임무송 금강대 공공정책학부 교수(전 고용부 고용정책실장)는 “꼭 기존의 고용보험제도 안에 전 국민을 끌어들여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지나치게 국민적 기대감만 높이면 사회적 갈등이란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용부도 한국형 실업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를 마련해 2차 고용안전망 확대를 추진 중이다. 국민취업지원제도는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특고·프리랜서·미취업 청년·경력단절여성 등이 지원 대상으로, 정부가 저소득층 구직자에게 1인당 월 50만원씩 최장 6개월간 구직촉진수당과 맞춤형 취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전날 고용보험법 개정안과 함께 구직자 취업촉진법이 통과되면서 국민취업지원제도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 장관은 1·2차 고용안전망을 통해 2022년까지 연간 200만명 이상이 고용안전망의 보호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1차 안전망인 고용보험 실업급여를 통해 약 140만명, 2차 안전망인 ‘국민취업지원제도’(한국형 실업부조)를 통해 약 60만명 등 중층적 고용안전망이 구축됐다”고 설명했다.
이동수 기자 d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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