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원구성을 ‘승자독식’이 아닌 ‘정당별 의석비례에 따른 배분’을 하기 시작한 13대 국회 이래 여야의 개원 공방이 거듭됐다.
임기가 시작됐음에도 자리다툼을 하느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입법 공백’기간이 수개월간 이어졌다. 21대 국회도 개원과 동시에 원구성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전직 국회의장과 전문가들은 “관례와 관행을 자리다툼 명분으로 내세우지 말고 새로운 상황에 맞게 협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각에선 각 당의 원내대표가 국회 의사일정의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교섭단체 전권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3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국민이 국회의원을 뽑고 국회를 만들었는데 (임기 시작부터) 원구성도 안 하고 자리싸움을 하면 국민으로부터 버림받는다”며 “싸우더라도 먼저 원구성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례나 관례를 갖고 말해서는 안 된다”며 “전례란 예전 것을 답습하라는 이야기인데 원구성은 상황에 따라 자리 배분을 하면 되는 것이지 왜 전례가 있어야 하느냐”고 강조했다.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장과 부의장 선출은 오는 5일까지, 상임위원장 선출은 8일까지 마쳐야 한다. 하지만 13대부터 20대까지 원구성에는 평균 41.4일이 걸렸다. 14대 국회 전반기 원구성이 125일로 가장 오래 걸렸다. 임기 시작 후 약 4개월간 국회 조직 구성을 놓고 다투기만 한 것이다.
전문가들도 관례에 얽매이지 말고 시대 상황에 맞게 협상할 것을 주문했다. 경기대 박상철 교수(정치전문대학원)는 “법제사법위원회를 야당 몫이라며 관행으로 주장하는 건 잘못됐다”며 “원래 법사위는 여당이 떠안는 상임위였다가 야당에게 주는 게 관행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제13∼16대까지는 원내 1당이 법사위원장을 차지했고 17대부터는 원내 2당이 맡았다. 2당이 맡으면서부터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이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 단계에서 발목 잡히는 일이 빈번해졌다.
박 교수는 “이번에는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 심판을 받은 만큼 여당이 법사위를 가져가면서 다른 상임위를 내주는 식이 합리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연세대 양승함 교수(정치외교학)는 “서로 적절하게 관례를 따르면 해결될 것”이라며 “거대 여당이 여유를 갖고 대승적 차원에서 법사위를 양보하면 다 해결될 걸로 본다”고 말했다.
국회가 원구성 지연 등 끝장 대치를 거듭하는 원인으로 ‘교섭단체 전권주의’를 지적하는 의견도 나온다.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각 의원의 의사를 묵살하고 원내대표 간 협상에 따라 국회 일정이 좌지우지되면서 국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한창일 때, 일부 야당 상임위원장은 위원회 전체회의를 열려고 시도했지만 당 지도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민주당 원혜영 전 의원은 최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국회 운영의 주체로 서지 못하고 교섭단체나 당 대표 1인에 의해 자유의사를 발휘하지 못하는 반헌법적 상황에서는 의원들이 거수기로 전락한다”며 “이런 교섭단체 전권주의를 21대 국회부터는 청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기대 박 교수도 “국회가 정당 못지않게 의원 중심의 움직임이 활성화돼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원구성 등이) 법정시한을 넘기면 자동으로 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미·이창훈·곽은산 기자 engine@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