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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만에 자리 옮긴 '수요시위'… 정의연 "밀려나도 이 자리에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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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6-24 16:55:53 수정 : 2020-06-24 16: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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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 '집회 장소 선점'… "尹 사퇴하라" 시위 / 정의연, 10m 떨어진 곳서 집회… 李 "눈물이 빗물 돼 흘러" / 시민단체, 소녀상 인근서 연좌 농성 / 경찰 "미신고 집회… 사법처리 예정"
24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 관계자와 소속 학생들이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단체들로부터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정오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로. 지난 28년간 매주 수요일이면 이곳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열렸지만, 이날은 그 자리에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해체하라’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렸다. 이 장소를 선점한 보수단체 자유연대 회원 등은 ‘평화의 소녀상’ 인근에서 고출력 스피커를 이용해 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 등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가하며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은 사퇴하라”고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정의연은 보수단체의 ‘집회 장소 선점’에도 일본을 향한 사죄 요구를 이어가기 위해 원 집회 장소로부터 남서쪽으로 10m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1445번째 수요시위를 진행했다. 장대비가 쏟아진 이날 시위에 참석한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빗방울이 눈망울에 맺힌다. 눈물이 빗물이 되어 흐른다”며 “인내와 파동의 역사를 묵묵히 견뎌왔던 평화로는 이제 ‘평화의 소녀상’을 가운데 두고, 다가갈 수 없는 슬픔의 협곡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연과 보수단체 사이에는 혹시 모를 충돌을 막기 위해 배치된 400여명의 경찰이 집회 시간 동안 평화로를 경비했다.

 

1992년부터 이어져 온 수요시위가 이날 장소를 옮겨 열리게 된 이유는 최근 자유연대 회원들이 종로경찰서 인근에 상주하면서 옛 주한일본대사관 인근의 집회 신고를 선점했기 때문이다. 이날 소녀상 인근에서 집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의 신고는 앞서 경찰에 총 4건 접수됐는데, 자유연대가 1순위를 차지하면서 정의연 등 다른 단체의 집회가 막힌 것이다. 자유연대는 전날 자정부터 다음 달 말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집회 신고를 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태껏 수요시위의 취지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인근에서 맞불 집회를 열었던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시위장소를 선점해 버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소를 옮겨 진행된 수요시위에는 궂은 날씨에도 시민 200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해 자리를 지켰다. 보수단체의 집회 방향으로 30여m가량 늘어선 시민들은 “일본 정부는 즉각 사죄하라”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이날 시위를 주관한 평화비경기연대는 “인권과 평화를 위해 순수한 동기와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된 시민운동이라 할지라도 의도하지 않은 실수와 오류가 존재할 수는 있다”며 정의연을 옹호했다. 자유연대의 장소 선점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에 참여한 김태중(29)씨는 “30여년간 이어져 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바라고 있다”며 “이것을 방해하는 어떠한 세력도 용납할 수 없어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생단체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 소속 대학생들과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 관계자들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주변에서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측의 집회 장소 한가운데 위치한 소녀상 인근에선 전날부터 소녀상과 자신의 몸을 끈으로 묶은 채 “소녀상을 지키겠다”며 연좌 농성을 이어온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 소속 10여명이 자리를 옮기지 않자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했다. 이들은 “소녀상에 대한 보수단체의 정치 테러를 막기 위해 자리를 떠날 수 없다”며 “보수단체가 집회 신고를 먼저 했더라도, 수요시위가 이미 오랫동안 이어져 온 만큼 경찰이 장소를 내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은 이들을 향해 “집으로 돌아가라”, “왜 경찰은 이들을 끌어내지 않느냐”며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경찰은 이들에게 ‘미신고 집회’라며 수차례 해산 명령을 내렸지만, 이들은 보수단체의 집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해산명령 불응까지 포함해서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정확히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정의연은 수요시위가 ‘피해 생존자들의 고통과 아픔, 상실감과 좌절감이 얽혀있는 자리’인 만큼 보수단체의 장소 선점에도 계속 시위를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이사장은 “밀려나고 빼앗기고 탄압받고 가슴이 찢기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이 자리에 있겠다”고 강조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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