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이 임박한 가운데, 미국 상원이 홍콩자치를 침해하는 개인이나 기업을 제재하는 홍콩자치법을 가결했다. 중·영 공동선언과 홍콩 기본법에 따라 중국 정부가 약속한 홍콩 고도자치권을 위반하는 행위를 제재하려는 미정부 대응 수위를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의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는 30일 홍콩 보안법을 제정한 뒤, 곧바로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홍콩보안법이 실제 시행되면 미·중간 갈등은 더욱 격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미 상원은 25일(현지시간) 홍콩 자치권을 침해하는 개인에 대한 징벌적 조치뿐만 아니라, 고의로 그 개인과 ‘중대한 거래’를 한 외국 금융기관도 제재하는 내용의 홍콩 자치법을 의결했다. 향후 하원 표결을 거친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면 정식 발효된다. 크리스 밴 홀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중국이 홍콩 자치권을 침해한다면 이에 대한 대가가 있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미정부가 홍콩 자치권 침해에 연루된 중국 관료와 홍콩 경찰 등을 제재할 수 있고, 이들과 거래한 은행에도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을 가할 수 있게 된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에 대한 미정부의 ‘최후통첩’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미 의회 안팎에서는 이 법안의 처리 속도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중국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홍콩 보안법을 제정하려고 하고 있어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 의지를 가늠할 수 있어서다. 커트 롱 전 홍콩·마카오주재 총영사는 “이 법안의 제정 속도가 관심을 끌고 있다”며 “상원이 이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려 하는 것도 중국 전국인민대표회가 홍콩 보안법을 서둘러 추진하고 있다는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 의회의 홍콩자치법은 실질적인 조치라기보다는 상징적인 대응에 가깝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이나 중국이 이 법안으로 해서 양국 간 대응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오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로버트 데일리 윌슨센터 산하 키신저 미중 연구소장은 “홍콩 자치법이 시행되면 베이징을 괴롭히기는 하겠지만 단념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홍콩자치법은 이번 제재를 ‘필수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제재를 포기할 수 있게 했다.
중국은 오는 30일 홍콩보안법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하고 즉시 시행할 가능성이 확실시된다. 홍콩 명보, 빈과일보 등에 따르면 존 리(李家超) 홍콩 보안장관은 지난 24일 홍콩 입법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홍콩보안법이 통과되는 즉시 기본법 부칙에 삽입돼 홍콩 법률이 된다”며 “공포 당일에 효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 현지 소식통도 “중국 중앙정부는 홍콩 주권반환 기념일인 7월 1일부터 홍콩보안법을 본격 시행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중국 전인대 상무위는 지난 18∼20일 회의에 이어 일주일 만인 오는 28∼30일 다시 회의를 개최하고, 마지막 날인 30일 홍콩보안법을 통과시킬 것으로 보인다. 홍콩보안법 통과 후 홍콩 정부는 이 법을 홍콩 기본법 부칙에 삽입해 시행한다. 기본법 부칙 삽입에는 특별한 절차는 없다. 홍콩 정부가 삽입해 시행한다는 발표만으로 충분하다.
베이징=이우승 특파원 ws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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