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뿌리 깊은 갈등이 최근 국제무대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G7(주요 7개국)과 유네스코,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를 통해 양국이 전방위적 외교 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 등을 포함해 G7 정상회의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에 반기를 들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29일 기자회견에서 ‘올해 G7에 추가로 정식 멤버를 더할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냐’는 물음에 “G7 틀 그 자체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일본의 기본 방침”이라고 잘라 말했다. 앞서 교도통신은 일본의 고위 관료가 미국 측에 한국 참가에 반대한다는 정부 입장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G7에 관한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 “몰염치 수준이 전 세계최상위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양국은 유네스코에서도 2015년 이후 5년 만에 재격돌했다. 하시마(일명 ‘군함도’) 등에서 벌어진 조선인 강제 노역의 역사를 사실상 왜곡하는 전시관이 도쿄에 개관하자 한국 정부는 유네스코에 서신을 보내 세계유산등록 취소 검토를 포함해 대응 조치에 나설 것을 최근 촉구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의 결의·권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우리나라(일본) 정부가 약속한 조치를 포함해 그것들을 성실하게 이행했다”며 이견을 표명했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이와 관련해 ‘한국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논설을 싣고 자국 내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 징용 판결 갈등에 더해 역사 문제를 둘러싼 대립은 한층 격해질 전망이다.
한국과 일본의 무역전쟁은 결국 양국이 대화로 풀어내지 못한 채 WTO 분쟁해결기구(DSB)로 넘어갔다. 일본은 징용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인 수출 규제를 완화하는 요구를 거부했고, 결국 한국 정부는 WTO의 분쟁 해결 절차를 재개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WTO 사무총장에 출마한 것을 두고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지난 26일 기자회견에서 유 본부장이 후보로 나선 것에 관한 질문을 받고서 “차기 사무총장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중략) 주요국의 이해를 조정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반응했다. 최근 산케이신문은 “즉시 (일본) 총리관저에 사령부를 설치해 정부가 한 덩어리가 돼 G7 각국 등의 지지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일본이 WHO 사무총장을 배출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일 갈등이 국제무대에서 본격화하면 일본은 ‘돈줄 조이기’ 등 이면에서 영향력 행사를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5년 유네스코가 중일전쟁 중 일본군이 벌인 난징대학살 관련 자료를 세계기록유산으로 올리자 일본은 유네스코 분담금 지급을 보류하며 제도를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일본은 미국에 이어 분담금을 두 번째로 많이 내고 있으며 유네스코는 적지 않은 압력을 느꼈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7년 한·중·일 시민단체들이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자료를 세계기록유산에 올려달라고 신청했을 때도 일본 정부는 분담금 지급을 미뤘고 유네스코가 등재 보류 결정을 내린 후 지급을 결정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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