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박상연(52·가명)씨는 4년 전 동네에서 떠돌던 강아지를 집에 들였다. 혼자 생활하기도 빠듯한 박씨는 당초 강아지를 키울 생각이 없었다. 처음에는 옷도 입고 있던 강아지가 잠시 주인을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나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빵과 소시지 따위를 먹는 것이 안쓰러워 박스로 임시 집을 만들어주고 밥도 챙겨줬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지붕 아래 살게 된 강아지는 박씨에게 가족 이상의 존재가 됐다. 하지만 강아지를 키우는 데 드는 사료값이나 예방접종비 같은 비용은 늘 부담이다. 박씨는 그런데도 “내가 안 먹더라도 얘를 굶기는 일은 없게 할 것”이라면서 “수급자라고 강아지를 키우면 안 된다는 편견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내 반려동물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박씨의 경우처럼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취약계층의 경우 반려동물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홀몸노인이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 동물을 기르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이들이 반려동물을 기를 수 있도록 진료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사람과 동물 모두의 복지를 향상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2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달 취약계층 604명을 대상으로 한 ‘반려동물 양육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취약계층이 반려동물 양육을 위해 월평균 지출하는 비용은 반려견 13만8437원, 반려묘는 12만4346원으로 12만~14만원 수준으로 알려진 전체 가구의 평균 지출비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생활비를 줄이거나(37.7%), 신용카드로 지불하고(22.7%)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리기까지(7.8%)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4.5%였다.
이러한 비용 부담에도 이들은 반려동물 양육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을 비롯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려동물 협동조합인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이하 우리동생)이 2017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것이 우울감 감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반려인이 동물 양육에 미숙하거나 경제적으로나 신체·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해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려동물을 기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키우는 것은 동물의 질환을 유발하거나 주거 환경의 위생이 악화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형주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반려동물 양육에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들 수 있다는 정보를 입양 전에 충분히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애경 우리동생 이사는 “반려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동물복지를 지원하는 것이 사람복지를 향상할 방법이 될 수 있다”며 “노인, 장애인, 저소득 취약계층의 반려동물을 위한 의료, 방문 돌봄, 이동 등을 지원이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시민참여예산으로 올해 취약계층 반려인에 대한 지원사업을 운영할 예정이다. 이들에게는 중성화수술 및 예방접종 등 의료서비스와 반려동물 행동·에티켓 교육, 위탁서비스 등이 제공된다. 이번 사업은 마포·서대문·은평·노원구 등 4개구의 취약계층 반려인 100명이 키우는 반려동물 200마리에 한해 제한적으로 지원된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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