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 전 검찰에 먼저 연락…檢서 면담약속 잡았다 '돌연 취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강제추행 의혹을 검찰이 경찰보다 하루 먼저 인지하고도 바로 사건을 접수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피해자 A씨 측은 고소 전 서울시 관계자 20여명에게 성추행 피해사실을 알리거나 전보를 요청했지만, 돌아온 건 “예뻐서 그랬겠지” 등의 책임회피와 회유성 발언뿐이었다고 주장했다.
A씨를 지원하고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22일 서울 모처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A씨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 질의응답에서 지난 8일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하기 앞서, 검찰에 면담을 요청했던 사실을 공개했다. 김 변호사는 “서울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하기 하루 전인 지난 7일 A씨와 상의 후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에게 연락해 면담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검찰 측은 고소장이 접수되기 전 면담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에 김 변호사는 “증거확보의 필요성 때문에 고소하고 바로 피해자 진술이 필요해서 면담을 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들은 검찰 측에서 “피고소인이 누구인지 확인해야 면담을 검토할 수 있다”고 답해 김 변호사는 피고소인(박 전 시장)에 대해 말했다고 한다.
이후 검찰과 김 변호사는 이튿날(8일) 오후 3시 면담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같은 날 저녁 검찰 측에서 “8일 면담이 어려울 것 같다”는 뜻을 김 변호사에게 전했다. 이에 대해 A씨와 논의 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접수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 같아 서울경찰청에 연락했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이에 서울중앙지검은 “해당 부장은 절차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돼 일단 부적절하다고 말해주면서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고, 다시 전화를 해 일정이나 절차상 사전 면담은 어려우니 절차에 따라 고소장 접수를 하도록 안내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상급기관에 보고하거나 외부에 알린 사실이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은 서울시가 합동조사단을 구성하자며, 조사위원 추천을 요청한 것에 대해 거절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서울시는 이 사안에서 책임의 주체이며, 조사의 주체일 수 없다”며 대신 국가인권위원회의 긴급 조치와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다음 주 중 진정을 낼 것이라고 전했다.
기자회견에선 서울시 내부에서 박 전 시장의 강제추행 등에 대한 방조가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 변호사는 A씨가 이미 피해사실을 인사담당자에게 언급했으며, 직장 동료에겐 박 전 시장으로부터 받은 속옷 사진을 보여주는 등 고충을 호소했으나 돌아온 건, ‘남은 30년 공무원 생활 편하게 하도록 해 줄 테니 다시 비서로 와 달라’, ‘(인사이동 관련해선) 시장에게 직접 허락받아라’는 등의 무책임한 답변뿐이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성고충, 인사고충을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전보조치를 취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점과 시장에게 인사이동 관련 직접 허락을 받으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가 계속 근무하도록 한 점 등이 인정된다면, (서울시 관계자들의) 추행방조혐의가 인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일각에서 제기된 추가 증거 공개 요구에 대해서는 “증거 자료는 수사기관에 제출했고, 추가로 확보되는 자료가 있을 경우 그 역시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에 제출될 예정”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못한 A씨는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이 대독한 글을 통해 “본질이 아닌 문제에 대해서 논점을 흐리지 않고, 밝혀진 진실에 함께 집중해주기를 부탁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 소장은 “A씨는 (시민들의) 응원과 지지에 힘입어 하루하루 잘 견디는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합동조사단 구성을 포기하고 피해자의 뜻대로 인권위 조사를 성실히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피해자 측에서 합동조사단 불참 의사를 밝힘에 따라 조사단 구성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피해자 지원단체의 조사단 참여 거부에 유감을 표하며 피해자가 인권위 진정을 통해 조사를 의뢰할 경우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송다영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도 “인권위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피해자의 의견을 존중해서 인권위 조사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진·김유나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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