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지난 6월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유망주 최숙현 선수(경북 경주시청 소속)는 어머니에게 이런 문자를 보낸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 사람들’이란 앞서 최 선수를 괴롭히고 때리고 못살게 군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의 감독과 운동처방사, 그리고 선배 선수 등이었다.
그로부터 거의 3개월이 지난 현재 ‘그 사람들 죄’를 밝히는 건 법원 재판부의 몫이 되었다. 그 사이 ‘그 사람들’이 다 구속기소돼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됐기 때문이다.
대구지검은 26일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후배 선수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로 장윤정(31·여) 선수를 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장 선수는 최 선수를 포함해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전·현직 선수들을 때리고 폭언하는 등 가혹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검찰은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의 김규봉(42) 감독과 일명 ‘팀닥터’로 불린 운동처방사 안주현(45)씨도 구속기소했다. 최 선수에 의해 ‘그 사람들’로 지목된 이들은 장 선수와 김 감독, 그리고 안씨 등이다.
장 선수보다 먼저 재판에 넘겨진 김 감독과 안씨 역시 최 선수를 포함해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전·현직 선수들을 때리고 괴롭히는 등 가혹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해외 전지훈련을 떠날 때 선수들에게 항공료 명목으로 1인당 200만∼300만원씩 요구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팀닥터’ 안씨의 경우 운동처방사 자격증을 가진 것이 전부인데도 의사를 뜻하는 ‘팀닥터’로 불리며 최 선수 등에게 온갖 악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실제로 의사인 것처럼 행세하기도 했다고 최 선수 동료들은 증언했다.
최 선수가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내부의 문제점을 바깥에 알리기 시작한 건 지난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인3종협회는 물론 대한체육회, 경주시청, 경찰 등 백방으로 찾아다니며 ‘그 사람들’한테 당한 고통을 호소했으나 이른바 ‘공권력’은 최 선수를 차갑게 외면했다.
결국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최 선수가 극단적 선택을 한 뒤에야 세상은 비로소 움직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시정을 지시했고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황급히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 사람들 죄’를 밝힐 수 있게 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비록 고인은 세상을 떠나고 없으나 ‘그 사람들 죄’를 정확하게 규명하고 그에 상응하는 죗값을 치르게 하는 건 이제 살아남은 우리들의 몫으로 남았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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