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처럼 항소심도 무죄라고 판단한다면 검사와 스폰서의 관계에 합법적 면죄부를 주는 것입니다.”(검찰)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저는 이미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가 새겨졌습니다.”(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이른바 ‘별장 성(性)접대 의혹’ 사건으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고검장급)의 항소심 재판에서 검찰과 김 전 차관이 팽팽하게 맞섰다.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김 전 차관의 최후진술에서 그가 그동안 겪은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검찰은 16일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심리로 열린 김 전 차관의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1심과 같이 징역 12년에 벌금 7억원, 추징금 3억3760여만원을 구형했다.
검사는 논고에서 “이 사건은 단순히 뇌물수수 사건에 대한 유무죄를 가리는 것을 넘어 그동안 사회적 문제가 된 전현직 검사의 스폰서 관계를 어떻게 형사적으로 평가할지, 우리 국민과 사법부는 이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관련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만일 1심처럼 이를 무죄라 판단하면 검사와 스폰서의 관계에 합법적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며 “대다수의 성실한 수사기관 종사자와 다르게 살아온 일부 부정한 구성원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유죄 선고를 호소했다.
검찰의 논고에 이어 김 전 차관이 최후진술을 했다. 검찰에서 검찰총장 바로 아래 고검장까지 지낸 그는 까마득한 후배 검사한테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지는 충격을 겪은 탓인지 다소 수척해 보였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이 자리에 선 것만으로도 정말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운을 뗀 김 전 차관은 “그간 제 삶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느냐”며 “실낱 같은 목숨을 부지하는데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라고 부들부들 떨었다. 이어 “저는 이미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깊이 새긴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김 전 차관은 “그래도 바람이 있다면 얼마 남지 않은 여생 동안 사회에 조금이나마 의미있는 일을 하고, 저로 인해 고통받은 가족들에게 봉사하며 조용히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며 “공정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달라”는 말로 재판부에 무죄 선고를 요청했다. 1956년생인 김 전 차관은 올해 64세로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다.
김 전 차관은 2006∼2008년 건설업자 윤중천씨에게 1억3천만원 상당의 뇌물과 함께 별장 성접대를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하지만 1심은 김 전 차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선고공판은 10월 28일 열린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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