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3차례 “아이들 방치돼” 신고
수사 결과 ADHD 장남 폭행 확인
법원, 1년간 상담·치료처분 그쳐
모친 전날부터 집 비워 참변 자초
단둘이 집에 있다가 라면을 끓이던 중 불이 나 중화상을 입은 인천 초등학생 형제가 돌봄 사각지대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형제의 어머니는 과거 아이들을 방치하고 때리는 등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17일 인천시 미추홀구와 인천시교육청, 경찰 등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에 재학 중인 A(10)군과 B(8)군 형제는 입학 이후 단 한 번도 돌봄교실을 이용하지 않았다. A군 형제 어머니 C(30)씨는 ‘아이들을 스스로 돌보겠다’는 이유로 매 학기 초 돌봄교실을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비대면 원격수업 기간에도 돌봄교실이 운영됐지만, 이들 형제는 집에서 원격수업에만 출석한 것으로 파악됐다. 형제는 유치원을 비롯한 보육기관에도 다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미추홀구 아동통합사례관리사가 2018년 5월 학교로부터 ‘아이들이 보육기관에 다녀본 적이 없어 또래 관계에 어려움이 있다’는 내용을 전달받고 지역아동센터에 보낼 것을 안내했지만, C씨는 거부 의사를 밝혔다. C씨는 ‘혼자 자활 근로를 나가고 있어 생계가 바쁘다’며 지역아동센터 입소와 관련한 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학교 측은 A군 형제를 위해 전문상담사를 투입해 교내에서 수차례 상담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관련 기관 간 유기적인 협조체계가 작동하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3차례 ‘A군 형제가 방치되고 있다’는 이웃들의 신고를 접수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지난 5월 “엄마가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보이고 경제적 형편상 방임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A군 형제를 아동보호시설에 위탁하게 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면서 경찰에 수사도 의뢰했다. 경찰 조사 결과 C씨가 아이들을 방치하고,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가 있는 첫째를 수차례 때린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C씨를 아동복지법상 방임과 신체적 학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검찰은 지난달 24일 인천가정법원에 아동보호 사건을 청구했고, 법원은 엄마와 형제를 분리 조치하는 대신 각각 6개월, 1년 동안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상담과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했다. 아이들이 엄마와 떨어지기를 원치 않는 게 주요 이유였다. 그러나 0∼12세 취약계층 아동에게 맞춤형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추홀구는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다. 미추홀구 관계자는 이날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지자체에 통보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이 같은 판결이 나온 것도 구청에선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앞서 A군 형제는 지난 14일 오전 11시10분쯤 미추홀구 4층짜리 빌라의 2층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난 불로 중화상을 입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들은 전날부터 엄마가 외출하고 없는 사이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려다 변을 당했다. 형제는 불이 나자 119에 신고한 뒤 집 주소를 말하고 “살려주세요”만 계속 외쳤다고 한다.
불은 10분여 만에 진압됐지만 둘은 큰 화상을 입고 서울의 한 병원 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형은 위중한 상태이며, 동생은 상태가 다소 호전된 것으로 전해졌다.
엄마와 사는 A군 형제가 기초생활 수급 가정으로 매달 수급비와 자활 근로비, 주거 지원비 등 160만원가량을 지원받았다는 소식에 후원단체 등에서 형제를 도우려는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코로나19로 돌봄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대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살피겠다”고 말했다.
인천=강승훈 기자 shk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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