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내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회고록에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가면을 쓴 사탄” 등의 비난을 했다가 사자(死者)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89) 전 대통령에게 검찰이 5일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전 전 대통령이 이날 재판에 출석하지 않은 가운데 그의 변호인은 “헬기 사격설은 허구”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이날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전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사건 결심공판에서 재판부에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이번 판결로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워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역사적 아픔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을 표현의 자유, 역사의 상대주의, 실증주의로 정당화해선 안 된다”며 “실형이 선고된 피고인을 디딤돌로 우리 사회는 부정의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사자명예훼손죄가 인정되면 2년 이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데, 검찰이 법정최고형에 가까운 형량을 구형한 것이다.
이날 검찰은 “(이번 사건을) 5·18 북한군 배후설, 일제 성노예 피해자 연행 부인, 나치의 홀로코스트 부인 사건 등과 비교해봤다”면서 “역사적 책임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적 진실을 전체인 양 호도하거나 거짓말로 단정하는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찰은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표현의 자유, 역사적 상대주의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공개되기만 하면 역사적 사실에 반할지라도 정당한 논쟁으로 격상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라며 “검찰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피고인 회고록의 편집 지침도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실을 취해 기록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 전 대통령의 변호인은 재판에서 “광주 상공에서 단 한 발의 총알도 발사된 적이 없다”며 “그것이 역사적 진실”이라고 맞섰다. 그는 “헬기 사격설은 비이성적 사회가 만들어낸 허구”라며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면 10만여명의 광주시민이 그 광경을 목격했을 것이고, 백주대낮에 벌어진 사건의 증거는 차고 넘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그러나 검찰이 수사한 내용에선 객관적 증거를 찾을 수 없고, 하나같이 추측에 추측을 더한 삼류소설”이라고도 지적했다. 변호인은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면서 “헬기 사격설은 국민을 분열시키고 역사를 왜곡하려는 한낱 허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전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을 한 조비오 신부에 대해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가면을 쓴 사탄” 등의 표현을 썼다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고, 검찰 수사 끝에 불구속 기소됐다. 이날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는 결심공판 참관 전 “이번 재판은 5·18 진상규명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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