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려면 철저히 바꿔야 한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임원들과의 자리에서 내놓은 주문이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 회장의 발언은 오늘날 삼성을 세계적 혁신 기업의 자리에 올렸다.
이 회장의 경영 기조는 오늘날의 현실에 비춰봐도 과감하고 선도적이다. ‘디자인과 경영은 별개가 아니다’는 ‘디자인경영론’부터 학력과 성별의 장벽을 무너뜨린 ‘열린채용’, ‘품질경영’, ‘5WHY 사고론’ 등 이건희식 경영 방침은 오늘날의 삼성을 만들었다.
이 회장은 오늘날 세계적 IT 기업인 삼성전자의 ‘반도체’·‘모바일’·‘가전’ 중심 사업 포트폴리오 근간을 갖췄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제일제당과 제일모직 등 밀가루와 면방직 등이 주력이던 삼성은 1974년부터 반도체 산업으로 눈을 돌렸다. 1982년에는 삼성반도체를 통해 ‘64K D램’을 출시해 반도체 시장에 본격 진출했고, 1993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했다. 당초 삼성의 반도체 진출은 기대보다 우려가 높았지만, ‘천연자원이 없는 우리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이테크 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이 회장의 강력한 의지로 추진됐다.
1990년대 진출한 모바일 산업도 오늘날 ‘삼성폰’의 근간을 다졌다. 당초 휴대전화 사업은 핀란드 노키아나 미국 모토롤라에 비해 한참 뒤처졌지만, 1995년 이 회장의 ‘애니콜 화형식’을 거치면서 품질을 크게 개선했다. 이후 이른바 ‘이건희폰’(SGH-T100) 등이 흥행하며 ‘애니콜 신화’를 이끌었다. 애니콜을 기반으로 삼성은 스마트폰 전환에도 발 빠르게 나서며 세계 1위의 ‘갤럭시’ 브랜드를 만들었다.
오늘날 세계 1위인 ‘삼성TV’ 역시 이 회장의 안목에서 비롯됐다. 과거 동양방송(TBC)에 근무했던 이 회장은 TV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당시 브라운관에 머물러있던 TV의 액정표시장치(LCD) 전환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고, 투박한 디자인을 바꾸기 위해 디자인팀을 해외로 파견했다. 그 결과 탄생한 ‘보르도TV’가 주목받으며 TV시장 세계 1위에 올랐고, 13년째 세계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이 회장은 여성 인재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강조했다. 이 회장은 2011년 그룹 내 여성 임원들과 오찬자리에서 “유연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여성은 능력도 있고 유연하다”며 “여성이 사장까지 해야 한다. 그래야 가진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1997년 낸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는 “다른 나라는 남자 여자가 합쳐서 뛰는데 우리는 남자 홀로 분투하고 있다”며 “이는 마치 바퀴 하나는 바람이 빠진 채로 자전거 경주를 하는 셈”이라고 언급하는 등 여성 인재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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