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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창업주 이병철이 밝힌 ‘3남’ 이건희 경영승계 이유

, 이건희 별세

입력 : 2020-10-25 12:23:54 수정 : 2020-10-25 12: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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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맹희씨·차남 창희씨, 후계구도서 밀려나며 삼성 총수로

 

 

이건희 회장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사진은 1987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왼쪽)의 취임식 모습. 삼성 제공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오전 향년 78세 일기로 별세한 가운데, 삼성그룹 총수가 되는 시작점부터 겪은 우여곡절이 조명받고 있다.

 

이 회장은 1942년 1월9일 대구에서 삼성 창업주인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 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 창업주가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청과·건어물 무역회사인 삼성상회를 경영하던 시절이다. 형으로는 전 제일비료 회장 맹희씨와 창희씨, 누나로는 인희(한솔그룹 고문), 숙희, 순희, 덕희씨가 있다. 여동생은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다.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1987년 작고)은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3남인 이 회장은 애초 우선 경영 승계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이 창업주는 책에서 “건희에게는 와세다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일 때 중앙매스컴을 맡아 인간의 보람을 찾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그 길이 가장 좋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며 “건희에게는 고생스러운 기업 경영을 맡기는 것보다 매스컴을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큰형, 작은형인 맹희·창희씨는 이 창업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경영승계 구도에서 밀려났다. 이 회장의 큰형 맹희씨(2015년 작고)는 ‘사카린 밀수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1966년 경영에서 물러난 이 창업주의 뒤를 이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섰으나 부친에 실망을 안겼다. 이 창업주는 “처음에는 주위 권고도 있고 본인 희망도 있어 장남 맹희에게 그룹 일부 경영을 맡겨봤지만 6개월도 채 못돼 맡겼던 기업체는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며 “본인이 자청해 물러났다”고 밝혔다.

 

차남 창희씨(1997년 작고)는 박정희정부 시절 삼성과 부친의 비리를 고발한 탄원서를 청와대 등에 제출한 사건으로 눈 밖에 났다. 이 창업주에 따르면 창희씨가 “대조직 관리보다 알맞은 회사를 건전하게 경영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고, 이 창업주는 그 뜻을 따라줬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왼쪽)와 유년시절 이건희 회장. 삼성 제공

큰형, 작은형은 경영구도 탈락에 따라 이 회장은 자연스럽게 후계 구도에 올랐다. 1966년 미국에서 귀국해 동양방송에 입사한 이 회장은 1979년 삼성그룹 부회장에 취임하며 실질적인 그룹 후계자가 됐고, 1987년 11월11일 이 창업주 별세 후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이 창업주는 “건희는 취미와 의향이 기업 경영에 있어 열심히 참여하여 공부하는 것이 보였다”고 경영인으로서 이 회장의 자질을 회고하기도 했다.

 

25일 오전 향년 78세 일기로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회장은 형 맹희씨가 그룹 경영에서 물러난 1973년 이후 교류하지 않았다. 맹희씨가 2015년 8월 중국에서 폐암 등 지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두 사람은 상속분 반환 소송으로 불화를 겪었다. 2012년 맹희씨가 이 회장을 상대로 “아버지가 생전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삼성생명 및 삼성전자,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이 회장이 단독 명의로 변경했다”며 상속분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2014년 2월26일 맹희씨가 결국 상고를 포기하면서 소송은 일단락됐다.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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