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오전 향년 78세 일기로 별세한 가운데, 삼성그룹 총수가 되는 시작점부터 겪은 우여곡절이 조명받고 있다.
이 회장은 1942년 1월9일 대구에서 삼성 창업주인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 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 창업주가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청과·건어물 무역회사인 삼성상회를 경영하던 시절이다. 형으로는 전 제일비료 회장 맹희씨와 창희씨, 누나로는 인희(한솔그룹 고문), 숙희, 순희, 덕희씨가 있다. 여동생은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다.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1987년 작고)은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3남인 이 회장은 애초 우선 경영 승계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이 창업주는 책에서 “건희에게는 와세다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일 때 중앙매스컴을 맡아 인간의 보람을 찾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그 길이 가장 좋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며 “건희에게는 고생스러운 기업 경영을 맡기는 것보다 매스컴을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큰형, 작은형인 맹희·창희씨는 이 창업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경영승계 구도에서 밀려났다. 이 회장의 큰형 맹희씨(2015년 작고)는 ‘사카린 밀수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1966년 경영에서 물러난 이 창업주의 뒤를 이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섰으나 부친에 실망을 안겼다. 이 창업주는 “처음에는 주위 권고도 있고 본인 희망도 있어 장남 맹희에게 그룹 일부 경영을 맡겨봤지만 6개월도 채 못돼 맡겼던 기업체는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며 “본인이 자청해 물러났다”고 밝혔다.
차남 창희씨(1997년 작고)는 박정희정부 시절 삼성과 부친의 비리를 고발한 탄원서를 청와대 등에 제출한 사건으로 눈 밖에 났다. 이 창업주에 따르면 창희씨가 “대조직 관리보다 알맞은 회사를 건전하게 경영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고, 이 창업주는 그 뜻을 따라줬다.
큰형, 작은형은 경영구도 탈락에 따라 이 회장은 자연스럽게 후계 구도에 올랐다. 1966년 미국에서 귀국해 동양방송에 입사한 이 회장은 1979년 삼성그룹 부회장에 취임하며 실질적인 그룹 후계자가 됐고, 1987년 11월11일 이 창업주 별세 후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이 창업주는 “건희는 취미와 의향이 기업 경영에 있어 열심히 참여하여 공부하는 것이 보였다”고 경영인으로서 이 회장의 자질을 회고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형 맹희씨가 그룹 경영에서 물러난 1973년 이후 교류하지 않았다. 맹희씨가 2015년 8월 중국에서 폐암 등 지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두 사람은 상속분 반환 소송으로 불화를 겪었다. 2012년 맹희씨가 이 회장을 상대로 “아버지가 생전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삼성생명 및 삼성전자,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이 회장이 단독 명의로 변경했다”며 상속분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2014년 2월26일 맹희씨가 결국 상고를 포기하면서 소송은 일단락됐다.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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