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유권자 밀집지 밀워키 등
사전 투표함 열면서 반전 시작
소수 인종 등 몰린 러스트벨트
4년 만에 등 돌려 ‘트럼프 심판’
백인층서도 바이든 선택 늘어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승리에 필요한 매직 넘버(선거인단 270명)에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은 흑인, 라틴계, 여성, 노동자 표가 결집하고, 핵심 경합지였던 ‘러스트벨트’(낙후된 공업지역)를 탈환했기 때문이다. 2016년 대선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틈새공략해 대이변의 승부수를 띄웠던 지역이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정권을 심판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현지시간) AP통신이 집계한 대선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흑인 90%, 라틴계 63%, 여성 53%가 바이든 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 계층 표심도 상당 부분 회복했다. 교외 지역 백인 남성들의 민주당 지지율은 2016년 28%에서 올해 40%로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압도적인 흑인 지지율은 바이든을 살린 일등공신이었다. 지난 사우스캐롤라이나 예비선거에서 나락에 떨어졌던 바이든 후보를 기사회생시킨 데 이어 대선에서도 승리에 톡톡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흑인 유권자들은 이번 대선 여정에서 또다시 민주당 승리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개표 초반 플로리다(선거인단 29명) 패배로 위축됐던 바이든 진영의 분위기를 바꾼 건 미시간(16명), 위스콘신(10명) 등 중서부에서 역전승을 거두면서였다. 흑인 유권자 밀집 지역인 밀워키와 디트로이트의 사전투표함을 열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이번 대선에서 흑인 표심은 일찌감치 바이든 쪽으로 모아졌고, 각 지역에서 사전투표를 독려하는 움직임도 활발했다. 비영리기구 ‘흑인 유권자도 소중하다’(Black Voters Matter) 공동창립자인 클리프 알브라이트는 WP에 “예비선거가 끝나자마자 흑인 유권자들에게 우편투표를 반드시 할 것을 장려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밀워키 지역에서 투표 독려 운동을 펼친 한 흑인 노동자는 “우리는 이번 선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며 “우리의 기본적인 인권이 위험에 처해 있었고, 우리 공동체를 위해 투표소로 가야 한다고 결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지역의 민주당 선거전략 담당자 역시 “다시 한번 미국 흑인 유권자들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나서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이라며 “이 나라에서 이들보다 더 신뢰할 만한 유권자 집단은 없다”고 밝혔다.
노동자들도 바이든 후보에게 표심을 보탰다. 2016년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두 지역 노조 가입 가구로부터 저조한 지지를 받은 것과 달리 바이든은 이번에 60%대 초반의 지지를 받아 선전했다.
소수인종과 여성, 노동자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핵심 승부처로 꼽히는 러스트벨트 지역의 승리로 이어졌다.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 3개주는 민주당과 공화당 경합지역으로, 1990년 무렵 이후 줄곧 민주당을 찍다가 2016년 소외된 백인 노동자들의 정서를 파고든 공화당 트럼프로 돌아섰다. 그러나 4년 만에 표심은 민주당으로 돌아왔다. 지난 대선 때 당시 민주당 정권을 심판하고 트럼프를 당선시켰던 이들이 이번에는 공화당 정권을 심판한 셈이다.
한편 민주당은 이번에 백인 유권자 표를 상당 부분 가져오는 데에도 성공해 승기를 더했다. 백인층 가운데 민주당을 찍은 유권자 비율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2016년 대선 때 백인 유권자 중 클린턴 후보를 찍은 비율은 39%였는데, 이번에 바이든 후보를 찍은 백인 유권자 비율은 43%로 4%포인트 상승했다.
폭스뉴스는 바이든 후보를 지지한 백인 유권자가 늘어난 비율인 4%포인트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 흑인, 히스패닉 유권자가 늘어난 비율(각각 2%포인트, 7%포인트)보다 올해 대선 전체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했다. 전체 유권자 가운데 백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74%로 흑인(11%), 히스패닉(10%)과 비교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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