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가요 ‘쌍화점’에 첫 등장
평양·개성 등 北지역서 먼저 발달
피 두껍고 크기 커… 국물도 심심
‘서울스타일’ 고기·김치·부추 등
종류 무한진화… 겨울철 더욱 인기
터질 듯 말 듯 오동통한 주머니를 보기만 해도 복이 또르르 굴러들어오는 듯한 만두.
뽀얀 만두피 속 야무지게 접힌 주름 안으로 고기와 야채 가득한 영양 만점 소가
푸짐히 들어 있는 만두는 매년 온 가족이 즐기는 새해 단골 음식이다. 만두는 찜기에
그냥 쪄먹어도 좋지만 지금처럼 칼바람이 품속을 파고드는 겨울철에는 푸짐하게
만둣국을 끓여 속을 덥혀도 좋다. 육수에 팔팔 끓여 뜨거울 때 바로 떠먹는 만두전골은
겨우내 시시때때로 생각난다. 만두는 빚는 데는 정성과 시간, 재료가 매우 많이 들어가지만
상대적으로 가격은 저렴한 대표적인 서민음식이다. ‘김새봄의 먹킷리스트’ 첫 번째 음식은 ‘복덩이 만두’ 다.
#만두의 원조는 제갈량
문헌에 기록된 만두의 첫 시작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승상 제갈량이 남만 정벌 후 돌아오는 길에 여수에서 풍랑이 심해 강을 건널 수 없게 됐다. 남만인들에게 이유를 묻자 그들은 인질로 잡은 오랑캐 49명의 머리를 바쳐서 남만 정벌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을 위로해 물의 신을 달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제갈량은 “이미 남만을 정복하며 많은 사람이 죽어 더 이상 죽일 수 없다”며 “사람 머리 대신 밀가루 반죽으로 사람의 머리 모양을 만들라”고 지시했고, 이에 밀가루 반죽 안에 고기와 야채를 섞은 것을 넣고 싸서 공물로 바치고 제사를 지내 신의 노여움을 달랬다는 고사로부터 만두가 유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가요 ‘쌍화점’에 처음 만두가 등장한다. 본래 한반도에서 만두로 가장 유명했던 지역은 북한 개성으로, 쌍화점 또한 개성의 만두집이었다. 이미 당시에 각 가정에서는 겨울이 되면 만두를 빚어 곳간에 걸어놓은 채반에 저장해 두고 먹었다고 한다. 특히 황해도는 밀과 메밀이 많이 나는 곡창지역으로 만두가 발전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이 때문에 전통적으로 국내에서 만둣국으로 유명한 대부분의 업장은 이북식 전통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옷도, 만두피도 북으로 갈수록 두꺼워진다
대체로 만두는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피가 두껍고 크다. 최근에는 소가 보일 정도로 만두피를 얇게 만드는 게 대세이지만, 과거에는 만두피를 두껍게 만드는 집일수록 부자라는 인식이 있어 만두 좀 한다는 집일수록 피가 두꺼웠다고 한다. 그만큼 질 좋은 밀가루를 잘 반죽해 숙성하기까지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다른 음식에서도 볼 수 있듯 이북식 만두와 만둣국은 국물의 간이 전반적으로 심심하며, 소는 야채의 비율이 높다. 평양식 만두는 소에 꿩고기 혹은 돼지고기, 부추, 호박 등을 넣는 스타일이지만 개성식 만두는 고기의 양을 적게 하고 채소가 많아 부드러운 편이다. 서울은 국물의 간이 조금 더 세며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함께 넣고 만두 모양도 작고 예쁜 모양을 추구한다.
남부지역은 온난한 날씨 탓에 야채와 고기가 쉽게 상하기 때문에 만두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편이다. 다만 서울을 포함한 이북 지방은 김치를 씻어서 텁텁함을 떨어내는 데 중점을 두는 곳이 많고, 경상도나 전라도 등 남부지방은 배추김치를 씻지 않고 넣어 속을 빚는 특성이 있다. 눈여겨볼 점은,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양파나 당면 등의 재료가 이북식 만두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에 당면 공장 등에서 나온 당면 부스러기를 넣으며 유행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파와 부추 역시 국내에서 수급이 원활해질 때부터 흔하게 넣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많다.
#개성 넘치는 만두집들
이북식 전통을 따르는 개성 있는 만두집 몇 곳을 소개한다. 이름이 오로지 만두집인 서울 압구정 ‘만두집’은 이름 때문에 찾기 어려운 곳이다. 압구정 로데오 샛길의 인적 드문 곳에 있다. 육향이 넘실거리도록 진하게 우려낸 국물에 두꺼운 피의 담백한 만두는 먹을수록 깊이가 있는 평안도 스타일 만둣국이다.
서울 목동 ‘개성만두’는 지단 없이 맑은 국물에 큼지막한 만두 다섯알이 퐁당 몸을 담그고 있다. 멸치육수로 국물을 냈지만 가볍지 않으면서 담백하다. 넉넉한 애호박과 부추, 돼지고기, 표고버섯 등이 들어간 만두소는 개성만두 특유의 부드러움을 선사한다. 만두소의 간은 젠틀하고 식감 또한 튀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강원도 평창 ‘남경식당’은 그 이름도 특이한 꿩만두를 만든다. 두껍고 쫄깃한 만두피에 심심한 국물은 이북식 만두의 전통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만둣국에 떡을 넣고 달걀물을 푸는 것은 서울 스타일과 중간 지점의 만둣국이다. 꿩고기를 소로 다져넣어 꿩고기 특유의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으며 야채의 비율이 상당하다.
비록 만두가 북에서 먼저 발달한 음식이지만 한강 이남의 우리나라식 만두 발전 속도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전국 각지의 마을 어귀에는 왕만두, 고기만두, 김치만두 등을 전문으로 하는 저렴하고 푸짐한 동네 만두집이 없는 곳이 없다. 개성 있는 이남식 만두 맛집들도 많다.
서울 부암동 ‘자하손만두’는 한정식 느낌의 담백하고 정갈한 모습이 큰 특징인 곳이다. 은은히 색을 낸 노랑 분홍 연둣빛 고운 만두가 인상적이다. 노란빛은 당근즙으로, 연둣빛은 시금치즙으로, 분홍빛은 비트즙으로 낸다고 한다. 고기와 두부, 숙주를 이용해 소를 만들고 조선간장을 사용하여 간을 맞추는 것이 비결이라고.
경기도 이천 ‘돌댕이 석촌골 농가맛집’의 볏섬 만두는 작은 만두를 다섯 개 만들어 큰 만두피로 싸서 만든다. 다섯가지 색의 만두는 오복을 의미해 이웃들과 나눠 먹으며 새해 풍년을 기원한다. 이천의 특산품인 게걸무가 들어가는데 매운맛이 강한 것이 특징. 게걸무 시레기를 이용해 만두소를 만들고 비트, 치자, 부추, 흑미 등 알록달록한 만두피를 만들어 입맛을 자극한다.
대구 ‘만두고을’은 푸짐하고 큰 왕만두를 전문으로 하는, 푸짐한 게 미덕인 한국식 동네 만두집의 전형이다. 피는 얇지만 속은 아슬아슬 터질 듯이 꽉 차는 만두고을의 만두는 소에 고기의 비율이 상당하지만 잡내나 퍽퍽함은 전혀 없다. 피는 그저 상당한 양의 소를 가두는 최소한의 역할을 할 뿐. 만두와 샤브샤브를 합친 ‘만두샤브샤브’가 유명하며 이 집만의 특색 있는 메뉴인 ‘치즈 군만두’도 인기 메뉴다.
김새봄 푸드칼럼니스트 spring58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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