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 한 방에 날리는 거제 외포항 대구탕/통영 욕지도 고등어뼈 조림 밥도둑 따로 없네
뽀얀 국물에 탱글탱글한 생선 살. 후각을 자극하는 향에 참지 못하고 한 수저 푹 떠서 입 속으로 밀어 넣는다. 오랫동안 뭉근하게 끓여 깊이가 느껴지는 국물 맛. 아침 내내 머릿속을 휘저어 놓던 숙취는 어느새 사라진다. 역시다. 말로만 듣던 거제 외포항 대구탕의 클래스는 여태 알던 대구탕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어 놓고 만다.
#미식가들의 해장, 외포 대구탕 맛보셨나요
경남 거제와 통영의 섬들을 둘러보려고 나선 여행이지만 풍랑주의보에 배가 뜨지 않아 하릴없이 숙소에서 한잔 두잔 기울이다보니 과음했나보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깨질듯 아프다. 오늘도 배가 뜨지 않는다니 해장이나 하러 가야겠다. 숙소 주인장이 알려준 외포항의 대구탕 맛집 양지바위횟집으로 향한다. 지세포항에서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25분 정도 달리자 병풍처럼 둘러싼 대금산과 망월산 자락에 포근하게 안긴 아담한 항구가 눈에 들어온다. 하늘을 향해 펄떡 뛰어오르는 생선 조각상이 이곳이 대구의 본고장인 장목면 외포항임을 알린다. 전국 대구 출하량의 무려 30%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의 대구 집산지다. 겨울철에는 오전 10시가 되면 외포리 어판장에서 경매인의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경매가 시작되는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다. 햇살이 따사로운 항구에는 대구를 잡는 둥근 통발 모양의 호망을 수선하는 어부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대구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제철이다. 겨울이면 산란을 위해 냉수층을 따라 부산 거제도와 부산 가덕도로 둘러싸인 진해만까지 이동하면서 이곳에 대규모 대구 어장이 형성된다. 그중에서도 외포항이 속한 장목면 인근 바다에 잡히는 대구를 최상품으로 친다. 그런데 대구탕 1인분 가격이 1만8000원이라니. 높은 가격에 놀라고 손님이 많아 또 한번 놀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걱정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고민하다 야외의 허름한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먼지가 날려 거기서는 절대 못 먹는다는 주인장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어렵게 대구탕을 ‘영접’했다. 거제에서는 주로 대구 대가리로 육수를 내고 대구, 모자반, 무 등을 넣고 뭉근하게 끓인다. 양념이래야 다진 마늘과 생강, 파 정도로 특별할 게 없다. 그런데도 진하고 구수하면서 개운한 국물 맛은 대접을 들어 ‘원샷’하게 만든다. 쫄깃쫄깃하고 탱글탱글한 대구 살은 씹는 맛도 끝내준다. 가격은 많이 비싼 감이 있지만 맛이 있으니 용서한다.
묵직했던 머리가 어느새 시원해져 경쾌한 발걸음으로 외포항을 둘러본다. 활처럼 휘어진 항구를 따라 60∼80cm의 커다란 대구가 주렁주렁 매달려 맛있게 익어가는 진풍경이 이어진다. 대구(大口)는 말 그대로 입이 큰 생선. 고등어, 청어, 가자미, 게류, 갯지렁이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전형적인 탐식성 어류라니 입이 큰 이유를 알겠다. 좌판에는 말린 대구들이 커다란 입을 쫙 벌리고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습이 매우 이색적이다. 날카로운 이빨과 선명한 눈깔이 당장 살아서 덤빌 듯 아주 생생하다. 항구를 따라 식당 10여곳이 영업 중이어서 대구찜, 대구회, 대구전, 대구초밥 등 다양한 대구 요리를 즐길 수 있다.
#통영 욕지도 고등어뼈 조림 밥도둑 따로 없네
통영 욕지도 여행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있다. 미식가들이 모두 엄지를 치켜세우는 고등어 회와 조림이다. 외포항이 대구의 고향이라면 고등어회는 욕지도가 원산지. 예전에는 싱싱한 고등어회는 제철인 겨울에나 맛볼 수 있었다. 그러다 10여 년 전 욕지도에서 국내 최초로 고등어 양식에 성공하면서 사계절 고등어회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제주도뿐 아니라 육지에서 먹는 고등회는 대부분 욕지도산이다. 이유가 있다. 욕지도 바다에서 전갱이, 삼치, 갈치와 함께 고등어가 풍부하게 잡히기 때문이다. 실제 일제강점기 욕지도는 어업의 전진기지로 번성했고 바다 위에 서는 시장인 파시(波市)가 1970년까지도 이어졌다. 일제는 고등어를 얼음 냉장해 일본으로 보냈고 남는 것은 섬 아낙네들이 염장해서 간독에 보관했다. 간고등어는 큰 화물선에 실려 마산항을 통해 중국, 만주, 베이징까지 수출됐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단다.
마침 점심 때라 욕지도항에 도착하자마자 승선권 매표소 직원에게 맛집 몇 곳을 추천받아 현지인들에도 인기 높은 늘푸른횟집으로 들어섰다. 손님으로 북적거릴 때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섬을 찾는 여행자들이 적어 손님이 거의 없다. 하지만 소문난 집인 만큼 역시 가격이 만만치 않다. 고등어회 2∼3분이 6만원, 3∼4인분이 8만원이다. 여기에는 고등어뼈 조림이 포함됐다. 고등어회는 손질이 매우 까다롭다. 비린내 제거, 독성 제거, 육질 숙성 등 3단계의 복잡한 요리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어느 하나 소홀해도 절묘한 욕지도 고등어회 맛이 사라진다.
푸른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썰어 나온 두툼한 회는 선풍기 날개처럼 가지런하게 놓였고 그 위에 생강 가루를 솔솔 뿌렸다. 남아있는 잡내를 없애기 위해서란다. 비린내 하나 없고 아주 고소한 회가 입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진다. 보통 많이 먹는 광어회나 우럭회와는 또 다른 맛의 신세계다. 순식간에 2인분 고등어회를 비우고 나니 고등어뼈 조림이 나온다. 그런데 몸통은 없고 머리와 뼈만 있다. 몸통이 왜 없느냐고 항의하려다 생각해보니 아차, 이미 내 뱃속에 들어앉았다. 시원한 무를 곁들인 매콤, 달콤, 칼칼한 조림 국물이 스트레스를 확 날린다. 밥도둑이 따로 없다. 순식간에 한 공기를 비우고 큰 소리로 외친다. “여기 공깃밥 하나 추가요!”
통영 강구안 활어회시장은 밤늦도록 활기가 넘쳐 난다. 추울수록 맛있는 석화 때문이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손님을 부르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그중 석화더미를 수북하게 쌓아놓은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가격을 흥정한다. 문 닫을 때가 됐으니 커다란 봉지에 담긴 생굴을 1만원에 가져가란다. 4명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양이다. 포구의 넉넉한 인심 덕분에 입가에는 커다란 미소가 번진다.
거제·통영=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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