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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향방에 촉각… 미술계 물납제 도입 호소 총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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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3-04 10:18:18 수정 : 2021-03-04 10: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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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톰블리 ‘무제’(1968). 리움 홈페이지 캡처

미술계가 문화재 또는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물납제 도입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미술계 숙원인 물납제가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소장품 처분 이슈와 맞물려 뜨거운 이슈로 부상하면서다. 

 

신임 황달성 화랑협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물납제를 완성하는 것이 공약”이라며 의지를 드러낸 데 이어, 화랑미술제가 시작된 지난 3일 미술계 협회와 단체들을 총망라해 ‘대국민 건의문’을 발표했다. 문재인정부의 장관인 박양우 전 장관을 포함해, 전 문화체육부 장관 8명까지 함께 이름을 올렸다.

 

◆미술품 물납제란

 

물납제란 재산세, 상속세 등의 세금을 미술품과 문화재로 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행 증여세 및 상속세법에서는 물납 대상으로 부동산과 주식을 제외한 유가증권만 인정하고 있다. 미술계 요구는 여기에 미술품과 문화재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의 관점에서도 문화재와 미술품을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세금을 들이지 않고 수집해 공공의 문화유산으로 삼기에는 더없이 좋은 제도여서 문화강국으로 불리는 선진국들에 도입돼 있다. 프랑스는 재산세와 상속세 등 전반에, 영국은 상속세에 한정해 미술품 물납제를 적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미술품 물납제 도입 필요성이 거론된 건 10년 넘은 일이지만, 국민적 관심이 높지 않았다. 지난해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를 사재를 들여 사 모았던 것으로 유명한 간송가가 오랜 재정난 속에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보물인 불상 2점을 경매에 내놓으면서 미술계에는 충격을 줬고, 국민적 관심도 일긴 했으나 이후 제도화는 흐지부지됐다. 현금납부라는 원칙에 예외를 어디까지 둘 것인지 논의가 무르익지 않았고 미술품 포함은 시기상조라는 인식 하에 국내 미술 시장 규모가 작다는 이유, 현행법으로도 50년 이상 된 문화재는 국외반출 되지 않는다는 점, 정확한 시가감정을 할 수 있느냐는 점 등도 걸림돌로 제기됐다. 하지만 미술계는 오히려 미술 시장 성장을 위해서라도 조속히 도입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시가 감정 능력도 한층 성숙해가고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황 회장은 “시가감정 부분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1982년 만들어진 협회 산하 감정위원회가 오랜 역사와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아가 후세대 전문인력 양성 방안 등에 대해서까지 빠른 속도로 연구하는 등 감정분야를 자신의 임기 내에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예술계 내에서도 이제는 도입할 때가 됐다는 공감대가 퍼져 있다. 이미 문화체육관광부의 과제 목록에도 미술품 물납제 도입이 명시돼 있으며,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이 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뼈대로 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지난해 말 발의해 소관 상임위원회인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눈에 띄는 건 이들이 낸 대국민 건의문에서는 더는 늦춰선 안 된다는 절박감을 강조한 점이다. 건의문은 “국회에서 관련 세법을 조속히 개정해 주실 것을 간절히 바란다”, “관련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기획재정부, 국세청 등 정부에서도 적극 후속 조치에 나서주시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프랜시스 베이컨 ‘방 안에 있는 인물’(1962). 리움 홈페이지 캡처

◆적용 1호가 삼성?

 

무관심 속에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던 미술품 물납제 논의에 불을 붙인 것은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개인 소장품들인 일명 ‘이건희 컬렉션’ 처분 이슈다.

 

지난해 10월 이 회장 사망 후, 약 11조원으로 알려진 삼성가의 상속세 납부 데드라인은 사실상 5월까지다. 삼성가가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시가감정을 민간 감정단체들에 맡긴 것이 알려지면서 그간 말만 무성하던 이건희 컬렉션의 윤곽이 희미하게나마 모습을 드러냈다. 감정단체들은 기밀유지 각서를 쓰고 작업에 착수했고, 감정 중인 사실, 의뢰인과 의뢰대상 등이 모두 보안사항임에도 관심이 워낙 뜨거운 예외적인 상황이다 보니 미술계 내에서는 감정과 규모가 기정사실화됐다.

마크 로스코 ‘무제’(1956). 리움 홈페이지 캡처

리움미술관과 수장고 등에서 나눠 진행된 시가감정 대상은 약 1만2000점, 감정 마무리 단계인 현재 추정가는 1조∼3조원까지 얘기된다. 한 작품이 1000억 원대를 하는 초고가 작품들도 여럿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 로스코의 색면추상 작품,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청동 조각, 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 작품 등도 감정을 받은 대표적인 초고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인상파 모네·르누아르, 후기 인상파 고갱, 야수파 마티스, 스페인 출신 입체파 피카소, 초현실주의 미로, 러시아 출신 초현실주의 샤갈, 프랑스 조각가 로댕·부르델·부르주아, 벨기에 초현실주의 대가 마그리트, 독일 추상화 대가 리히터 대작 등, 서양미술사를 망라하는 컬렉션이다. 이 회장이 생전 40년간 ‘명품주의’를 철학으로 내세우며 모은 결과, 그대로 미술관을 만들면 “세계 5대 미술관이 될 정도”라는 후문이다.

 

국보급 한국 고미술품은 그나마 국외 반출되지 않는다는 안전장치가 있더라도, 국공립 미술관들에서 세금으로 꾸린 예산으로는 언감생심 사 모을 수 없을 근현대 서양미술품 등은 삼성가가 세계적인 경매에 내놓아 현금화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미술계가 지난해 간송 사태까지 거론하며 전전긍긍하는 이유다. 이 같은 작품들이 매각차 경매에 나온다면 세기의 경매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겠지만 우리나라로서는 뼈아픈 일이라는 것이다. 마침 미술계 숙원이기도 한 물납제 도입이 가장 좋은 대안인 만큼, 제도화에 서둘러 달라는 호소가 대국민 건의문을 통해 나온 것이다.

프랜시스 베이컨 ‘방 안에 있는 인물’(1962). 리움 홈페이지 캡처

◆국민적 지지 필요

 

이건희 컬렉션 이슈가 부상한 가운데 미술계는 복잡한 심경도 보인다. 삼성가가 적용 1호여서 논란이 될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지난 1월 삼성가의 감정 진행 사실이 처음 보도됐을 때 “이렇게 되면 오히려 물납제가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반면 삼성이 아니면 이만한 관심을 끌고 추진 동력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 기자간담회에서 “물납제가 도입되면 1호가 삼성이 되는 건데 국민께서 어떻게 보실지는 모르겠지만”이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내비쳤던 황 회장은 대국민 건의문을 통해 국민적 지지도 요청했다. 건의문은 “개인 수장고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수많은 문화재와 미술품이 국민 모두의 곁으로 찾아올 수 있다. 사익과 공익을 조화시켜, 개인 소장품들이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에 영구 보존, 전승, 활용될 수 있는 첩경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물관과 미술관의 소장품은 국민에게 기쁨과 자긍심을,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 되고, 국가적 자긍심의 요체가 돼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지지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5월까지 물납제 도입 입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이건희 컬렉션이 적용 1호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전망은 엇갈린다. 사실상 어렵다는 의견과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시각이 공존한다. 물납제가 도입되지 않더라도 이건희 컬렉션은 흩어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방안에 대한 물밑 논의가 바로 기부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3일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삼성 쪽과 기부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다만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삼성가가 기부 방안도 고려 중이라는 보도만 보았을 뿐 공식 접촉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기부를 받는다면 미술관이나 미술계로서는 큰 도움이 되는 일이지만 사유재산인 만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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