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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드러나는 광장의 삶 벗고… 내 세계 속으로 깊이 들어가… 잘 발효되고 익으면 소설 쓸 것" [나의 삶 나의 길]

, 나의 삶 나의 길

입력 : 2021-03-27 06:00:00 수정 : 2021-03-26 22: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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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구시렁구시렁 일흔’ 펴낸 작가 박범신
뜨거운 현역 작가로 사는 것이
꿈이고 좋은 줄로만 알았는데
더 깊은 작가라는 말 듣고 싶어

소설은 인과적 논리 확보해야
평생 시인으로 살고 싶었는데
강박 속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고교시절 두 번이나 자살 미수
격렬한 내적 갈등과 번뇌 연속
글은 소통을 놓는 길이자 다리

인기 있는 소설만 쓰다가 절필
외딴 산속에서 수도승처럼 살아
예술적 작가·예인으로 남았으면

“광장의 삶이란 모든 것이 투명하게 보이고 모든 것이 실체적이고 리얼하고 피 튀기는 삶 같은 것입니다. 이제, 그것이 질렸어요. 광장에 있는 것 같은 삶을 더 이상 살지 말고, 조금 더 은밀한 내 세계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잘 발효되고 익으면 소설을 쓰려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오랫동안 대중의 지지를 받았던 작가 박범신은 자신의 두 번째 시집 ‘구시렁구시렁 일흔’(창이 있는 작가의 집)에 담긴 시 가운데 몇 대목을 설명하다가 “이제 광장의 작가를 졸업하겠다는 선언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툭 던지듯이.

 

그에게 해설을 부탁한 대목은 “잠이 영 오지 않는 밤엔/ 잠든 그대에게 편지를 쓴다/ 물 위에 쓰는 편지는/ 후회가 없다// 나는 요즘 물 위에 소설을 쓴다”(‘불면’ 전문)와 “나/ 살아/ 관/ 속에 있네// 관 속에서/ 면도날 틈으로/ 남몰래 내다보네// 저 순정 어린 아수라 불빛”(‘고백’ 전문)이라는 부문.

문단 구력 48년의 박범신은 데뷔 초기를 제외하고 1970년대 후반부터 ‘광장의 작가’였다. 열렬하게 글을 쓰고, 열렬하게 책을 내고, 책이 나온 후에는 인터뷰하고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나와 작가와의 대화를 했다. 업계 안팎에선 ‘청년작가’로 불려 왔고, 그 또한 이 말이 싫지 않았다. “감수성이 늙지 않았다는 칭찬으로도 들리고, 한편으론 현역 작가로 시종하고 싶은 그의 꿈과 부합하는 말”이라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구시렁구시렁 일흔’이라니. 세월의 이미지가 선연한 이 시집 제목을 정하는 건 그래서 쉽지 않았다. 출판사 대표와 두 차례나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어렵게 합의했다. “그런데요, 선생님.” 식사가 다 끝나고 찻집으로 자리를 옮긴 뒤, 출판사 대표가 다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계속 청년작가라고 불려 오셨는데 구시렁구시렁 일흔, 괜찮을까요.” 청년작가라는 이미지가 퇴색될까 걱정해 묻는 말이었다. 그가 답했다. “청년작가, 그거 하기 힘들어!”

소설가로 익숙했던 박범신이 인간의 희(喜)·로(怒)·애(哀)·락(樂)·애(愛)·오(惡)·욕(欲)이 밴 시 140여편을 묶은 시집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나 “본래 ‘시인’인 나를 지금이라도 부디 ‘시인’으로 너그럽게 받아주세요”라고 조용히 요청하고 있었다. 왜 시인으로 돌아왔을까. 그를 지난 15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부근 커피숍에서 만났다.

 

―표제시 ‘구시렁구시렁 일흔’(전문은 “밤늦게 늙은 아내와/ 마주 앉아/ 생막걸리 나누어 마시면서/ 구시렁구시렁/ 낮의 일로 또 싸운다// 삶의 어여쁜 새 에너지/ 구시렁구시렁에서 얻는다”)을 읽으면 ‘버럭’하던 청년작가에서 ‘구시렁구시렁’하는 노인으로 변화가 담겨 있는 것 같다.

 

“나이 먹는 것도, 나쁜 것이 더 많지만, 꼭 나쁜 것만 아닌 것 같다. 버럭 하고 소리 지르고 싸우는 것이 나는 청년인 줄 알았다. 요즘 청년들은 버럭 소리를 지르지 않더라. 타인에 대한 마음속 깊은 배려심을 배운다. 지금은 나이에 합당한 정도로 변화했다. 그 변화야말로 나의 새 에너지라는 얘기다. (완전히 구시렁구시렁하는 사람으로 변한 것인가) 지금은 화가 나도, 상대편의 주장이 있기 때문에, 내 주장을 강렬하게 하지 않는다. 이젠 내 주장을 내려놓고 상대편의 주장에 귀 기울이려는 태도로 변화하고 있다.”

 

―무엇이 ‘청년작가’에서 ‘구시렁구시렁’거리는 노인 작가로 이끈 것인가.

 

“뜨거운 현역 작가로 사는 것이 꿈이고 좋은 줄 알았는데, 지금은 더 깊어지는 깊은 작가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방향으로 지향이 바뀌었다. 내 자신이 나이 먹는구나, 라고 느꼈다. 더 깊고 더 곰삭은 향기, 이런 것들을 내 안에서 스스로 요구하는 것으로 변모했다. 이제 청년작가가 아니라 더 깊어지는 향기로운 작가가 되고 싶다.”

오랫동안 ‘청년작가’로 불렸던 박범신 작가가 최근 “본래 ‘시인’인 나를 지금이라도 부디 ‘시인’으로 너그럽게 받아주세요”라며 두 번째 시집 ‘구시렁구시렁 일흔’을 펴냈다. 재작년 가을 폐암 수술을 받은 그는 “광장으로부터 밀실로, 청년작가에서 더 깊어지는 작가로 돌아가고 싶다”고 희망했다. 남정탁 기자

―산문시 ‘꿈’을 보면 “산문의 세계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비애의 안경 너머를 기록했다”며 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독자들은 소설을 편하게 읽을 수 있지만, 작가 입장에선 모든 이야기가 인과적 논리를 확보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소설은 자연과학 이상으로 엄격한 것이다. 심지어 아름다운 사랑의 장면조차 어떤 이야기의 구조 안에 인과적으로 담아 독자들을 설득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고통받는다. 박범신이라는 작가는 감수성은 예민하되 그것을 담아내는 논리적인 뇌구조에선 취약한 것 같더라. 작가는 논리와 감성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나는 평생 균형 잡는 게 힘들었다.(그래서 시인으로 돌아온 건가) 시들은 논리를 벗어나 있다. 나는 평생 시인으로 살고 싶었는데, 되돌아보니 산문의 세계에서 논리와 사실적인 실체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이었다. 그 소망을 이번 시들을 통해 풀었다고 할 수 있다. 시를 쓸 때보다 더 자유로워졌다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 시인으로 사는 내가 소설가로 사는 나보다 더 행복하다고 할까.”

 

1946년 전북 익산군 황화면(현재 충남 논산시 연무읍)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작가 박범신은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殘骸)’가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어떻게 문학의 세계에 들어온 것인가.

 

“나는 외아들로, 누나만 네 분 계셨다. 아버지는 읍내에서 포목 장사를 하느라고 집을 비웠고, 어머니는 예민한(sensitive) 분이었는데 누나들과 자주 불화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의 부재 때문에 생긴 일인 것 같더라. 어렸을 때, 어머니와 누나들 간 불화 때문에 세상은 불화에 가득 쌓여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어린 나를 세계와 어떤 소통도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고독하게 만들었다. 고교 시절 자살 미수를 두 번이나 했다. 세계와 나 사이의 소통 불능의 절망감, 그런 고독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것 같다. 너무 비대하게 책을 많이 읽어, 자기 죽음을 결정하는 것을 통한 퍼펙트한 자유의 획득, 같은 이상한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격렬한 내적 갈등과 번뇌는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고, 예민한 나는 세계의 그림자가 비칠 때마다 상처받기 마련이었으며, 그런 상처를 넘어서고 싶은 욕망 같은 것도 가득 안게 된다. 그런 것이 결국 글로 이끌었다. 글은 소통이 불가능한 세계와 나 사이의 다리 같은 것, 소통을 놓는 길,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길이었다. 이미 대학을 갈 때쯤 됐을 때에는 글쓰기에 심취한 상태였다. 하지만 문학을 정식으로 배워본 바 없어 신춘문예에 응모했다가 4, 5번 떨어진 뒤 1973년 등단할 수 있었다.”

 

등단 이후 사회비판적인 소설을 썼던 그는 1979년 첫 장편 ‘죽음보다 깊은 밤’이 그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단숨에 인기 작가로 부상했다. 1993년까지 최인호, 한수산 등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 시기 펴낸 ‘불의 나라’, ‘풀잎처럼 눕다’ 등 많은 작품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하지만 1993년, 그는 “나의 상상력의 불이 꺼졌다”며 ‘문화일보’에 연재 중이던 ‘외등’을 중단하고 돌연 절필을 선언했다.

―왜 절필을 선언했는가.

 

“죽어라고 인기 있는 소설을 계속 쓰다 보니 상상력의 우물이 마르는 느낌이었고, 내가 꿈꾸던 작가의 포지션이 아니라 대중들이 바라보는 무대 위에 있는 것 같더라. 굉장히 절망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 등 시대 상황도 스트레스를 줬다. 민주화 과정에서 과연 작가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의식도 억압하고 있었다. 여기에 내적 갈등까지 겹쳐 계획도 없이 연재를 끊어버렸다.”

 

절필 이후 경기도 용인의 외딴 산속에서 혼자 살았다. 언제 다시 글을 쓴다는 보장도 없이 3년을 조그만 텃밭에서 수도승처럼 살았다. 어느 날, 그는 밭농사를 하다가 ‘그는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는 식으로 소설을 중얼거리는 자신을 보고 문단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쓴 것이 1996년 중편 ‘흰 소가 끄는 수레’였다.

 

작가는 이후 장편 ‘나마스테’, 갈망의 3부작인 ‘은교’와 ‘촐라체’, ‘고산자’, 자본주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소금’, ‘비즈니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등을 펴냈다.

 

하지만 2016년 10월 성추행 의혹이 제기됐고 피해자로 지목된 이들 중 일부가 피해를 받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확산했고, 그는 진위나 성격 논란과 상관없이 “내 일로 인해 상처받은 모든 분께 사과하고 싶다”며 사과한 뒤 활동을 중단했다.

 

그는 1995년부터 2011년까지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상명대 석좌교수로도 잠시 근무했다. 한국방송공사(KBS) 이사장과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앞으로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작가도 여러 유형이 있는데, 나는 지사적인 작가도, 권위 있는 작가도 되고 싶지 않다. 대신 소설가이면서 예술가이고 싶은 욕구가 강력하다. 소설은 엄격한 논리와 이데올로기, 세계관의 깊이를 확보해야 하기에 반은 학문적인 느낌이 있다. 우리나라는 주자학의 DNA도 있어 특정 이데올로기나 세계관을 앞세우거나 명분을 내세워야 작가로 유리하지만, 나는 예술적인 작가, 예인으로서의 작가이고 싶다. 그런 이미지로 기억해줬으면 한다.”

 

잠깐 4, 5일 정도 논산 집필실에 내려갔다가 서울로 다시 올라오는 식으로, 박범신은 주로 서울에서 지내며 소설을 기다리고 있다. 가슴 어디에선가 “배뱅이, 일종의 신명 같은 게 와야 한다”고 했다. “소설 쓰고 싶은 욕망이 도저해져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중동의 시간이죠. 때가 오면 글을 쓸 것이고, 지금은 제 안에 물이 고이기를 기다리는 상황이에요.”

‘배뱅이’가 아직 오지 않은 그가 이날 기자에게 건넨 책은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를 그린 대산문학상 수상작 ‘고산자’(문학동네)였다. 전철 안에서 시선은 책 속으로 급하게 빨려갔고 고산자가 지토선에 올라 강화로 빠져나가며 바우에게 남긴 마지막 말에서 멈춰섰다. “그야…지도를 그리지. 이제, 바람이…가는 길을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길을 내 몸 안에 지도에 새겨 넣을까 하이. 오랜…옛산이 되고 나면 그 길이 보일 걸세. 허헛, 내 처음부터 그리고 싶었던 지도가 사실은 그것이었네.”(347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박범신은… ●1946년 전북 익산군 황화면(현 충남 논산시 연무읍) 출생 ●전주교육대학 및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고려대 교육대학원 졸업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殘骸)’가 당선돼 등단 ●작품으로 소설집 ‘토끼와 잠수함’, ‘덫’, ‘흰 소가 끄는 수레’,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등,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밤’, ‘불의 나라’, ‘물의 나라’,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 ‘당신’, ‘촐라체’, ‘고산자’, ‘은교’, ‘소금’, ‘비즈니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등 다수 ●대한민국문학상, 원광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다수 수상 ●명지대 교수(1995∼2011) 및 상명대 석좌교수 등 역임 ●KBS 한국방송공사 이사장 및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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