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짜리 입양아동을 학대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린 양부가 자신의 미성년 자녀들에게도 가벼운 폭행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중태에 빠진 입양아의 양부모들은 아이가 쓰러진 당일에도 아이를 안고 인근 처가댁에 1시간가량 다녀오는 등 폭행 후 6시간이 지나서야 병원을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양모도 아동복지법상 방임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
◆ 폭행 6시간 지나 병원行…의식 잃은 아이 데리고 본가·처가 돌기도
17일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대는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중상해 등 혐의로 30대 양부 A씨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A씨는 지난달 중순 첫 학대를 시작한 뒤 점점 폭행 강도를 높여오다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양모는 남편이 아이를 학대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외부에 알리거나 적절한 치료를 해 주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지난 8일 오전 11시쯤 입양한 B(2)양의 얼굴과 머리 등을 손과 나무 재질의 구둣주걱 등으로 때려 의식을 잃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양은 같은 날 오후 5시쯤 A씨 자택인 경기 화성시 인근의 한 병원에 의식불명 상태로 실려 갔다가 인천 길병원으로 이송됐다. B양은 뇌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지만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범행은 병원 의료진이 뇌출혈과 함께 B양 얼굴과 신체 곳곳에서 발생한 멍 자국을 의심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드러났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지난달 중순 시작해 지난 8일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학대를 이어왔다고 진술했다.
처음에는 나무 재질의 등긁개로 손바닥과 발바닥을 때리는 정도였으나, 지난 4일과 6일, 8일 이어진 학대에선 허벅지, 엉덩이 등을 거쳐 얼굴에 직접 손찌검을 하는 등 정도가 점차 세졌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의자에 올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 올라가거나 울지 말라고 했는데 계속 우는 등 말을 듣지 않아서 폭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 부부는 B양 외에도 10세 이하의 미성년 친자녀 4명을 홈스쿨링 등을 통해 양육 중이다. 하지만 B양에 대한 폭행이 집 안방에서 문이 닫힌 채 이뤄져 친자녀들은 A씨의 학대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아내 C씨는 B양을 씻기는 과정에서 멍 자국을 발견한 뒤 재차 B양을 때리는 A씨를 말렸으나, B양을 병원에 데려가거나 외부에 알리는 등 양육 책임을 다하지 않아 함께 입건됐다.
◆ 친자녀 4명 중 3명도 등긁개로 폭행…B양, 지난달 병원 검진에선 폭행 흔적 안 나와
이들 부부는 B양이 쓰러진 지난 8일에도 폭행 6시간이 지나서야 B양을 병원으로 옮긴 것으로 조사됐다. A씨 부부는 “아이가 잠이 든 줄 알고 의식 없는 아이를 안고 인근 처가댁에 1시간가량 다녀왔다”며 “이후 아이가 앓는 소리를 내는 등 이상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옮겼다”고 진술했다. 병원으로 옮길 때도 곧바로 119 구급대를 부르지 않고, A씨 차량으로 병원으로 가던 도중 본가에 들러 친자녀들을 내려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친자녀 4명에 대한 면담 과정에서 3명의 자녀가 폭행 피해를 본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아동보육담당 공무원 등이 입회한 가운데 이뤄진 개별 면담에서 초등생 자녀들은 지난 3월 초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발바닥을 등긁개로 맞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지난 4월 중순 처음으로 B양을 때리기 시작했다는 A씨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병원 진료기록을 살펴본 결과, B양은 지난해 9월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았고, 이후 올 4월에도 인근 병원을 찾아 의사를 만났다. 당시 의료진들은 B양에게서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A씨 부부는 모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며, 아내는 전업주부다. B양 입양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도 않았다. 이들은 B양을 입양한 이유에 대해 “2019년에 아내와 함께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그곳에 있던 아이(B양)를 처음 만났는데 이후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입양기관을 거쳐 아이를 키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정신병력이 있거나 사건 당시 음주 상태도 아니었다”며 “B양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육아 스트레스를 받아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심리전문가나 아동학대전문가 등을 배석하지 않은 채 폭행 사실에 초점을 맞춰 면담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향후 아동보호기관과 협력해 B양의 의료비를 지원하고 분리조치와 파양 등 신병처리에 나설 방침이다.
◆ 양부, 사회복지사 자격증 지닌 평범한 직장인…전문가 “아이·부모 모두 적응에 어려움 겪은 듯”
보건복지부와 아동입양기관 등에 따르면 A씨 부부는 4명의 자녀를 기른 경험을 과신해 입양 전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경찰 조사 과정에서 “각기 다른 (성격의) 아이 4명을 키웠기에, 다섯 번째 아이도 쉽게 기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B양의 경우, 세심한 관심을 필요로하는 특별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한 입양아동 전문가는 “통상 2세 미만의 아이들이 입양전문기관에 머물다 가정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B양의 경우, 일반 보육시설에 2년 넘게 머물며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급작스럽게 일반 가정으로 옮기면서 아이와 양부모 모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양기관이 아닌 일반시설에 2년 가까이 머물던 아이가 입양가정에 적응하기 위해선 과거 시설에 머물던 시간 만큼 적응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남 2녀를 기르며 입양을 준비하다가 결국 포기한 적이 있다”면서 “입양 전 심사를 강화하기보다 충분한 고민을 할 기회와 시간을 더 많이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현행 국내 관련법은 입양 전 A씨 부부와 같은 입양가정에 최소 규정인 8시간의 의무교육만 규정하고 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입양가정의 문제만이 아니어서 국내 모든 부모를 상대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부모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정신병력이 있거나 사건 당시 음주 상태인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며 “B양의 치료 경과를 지켜보며 의료비를 지원하고, 아동보호기관과 협력해 친자녀 등에 대한 면담과 구호 조치 등을 철저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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