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분단 60년 만에 민간인 통제선 이북지역에 대한 종합 생태계 조사가 이뤄졌다.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이곳에서는 산양과 사향노루 같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동물들이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이 센서카메라에 잡혔고 찬물에서 사는 물고기인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버들가지는 이 지역 내 고성군 남강 상류 등 일부 구역에서 서식한다고 확인됐다.
환경부는 17일 국립생태원이 주관해 진행한 민통선 이북지역(민북지역) 생태계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국립생태원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에 걸쳐 조사한 결과 이 지역에는 4315종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고 파악됐다. 그중 멸종위기 야생생물 44종은 이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종이었다.
민통선부터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까지 1133㎢ 지역은 분단 이후 60년 이상 민간인 발길이 끊긴 곳이다. 여전히 이곳은 군사지역이라 환경부는 39개 경로를 정해 해당 권역만 조사했다.
사람 출입이 통제되면서 생태계 훼손이 적어 다른 일반지역에서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는 곳이 됐다. 식물 1126종(멸종위기 2종), 포유류 24종(6종), 조류 145종(17종), 양서·파충류 29종(5종), 육상곤충 2283(4종), 어류 81종(8종), 저서성대형무척추동물 334종(4종), 거미 293종(0종)이 관찰됐다. 민북지역이 면적만 놓고 보면 국토의 1.13%에 불과하지만 생물종 분포로 보면 국내에 서식한다고 알려진 전체 생물종(2만6814종)의 16.1%를 차지했다.
특히 민북지역에서 발견된 멸종위기 야생생물 44종에는 두루미, 재두루미, 산양, 사향노루, 버들가지 등 국제적인 멸종위기 종도 다수 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두루미와 Ⅱ급인 재두루미는 전 세계 생존개체수의 절반가량이 철원평야를 중심으로 연천, 파주에서 월동한다. 두루미는 전 세계 2800∼3300여 개체 중 1600여 개체가, 재두루미는 전 세계 6200∼6500여 개체 중 5700여 개체가 이곳에 서식한다. 역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산양과 사향노루는 화천군, 양구군, 고성군 일대 산악 암반지대에서 확인됐다.
조사한 권역 중에서도 철원·연천 서부 평야와 파주·연천 서부 임진강 하구 지역은 생물다양성이 가장 풍부하다고 나타났다. 산림과 하천, 농경지 등 다양한 서식 환경이 갖춰져 여러 생물이 먹이활동 등에 유리했던 영향으로 평가된다. 서부 평야 권역에 2409종, 서부 임진강 하구 권역에는 1843종의 생물이 서식한다고 조사됐는데 면적 대비 출현 생물종 수로 따지면 제곱킬로미터당 각각 13.7종, 11.6종이 관찰된 꼴이다. 생태계 보호지역으로 구분되는 국립공원과 비교해도 면적 대비 출현 생물종 수가 가장 많은 월악산국립공원이 10.1종에 그친다.
철원군, 화천군 등 일부 지역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개발이 어려웠으니 지난 1월 보호구역에서 해제돼 향후 개발 가능성이 높아졌다. 각 지자체는 국방부 허가 없이 지역개발이 쉽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화천군에서는 산양과 사향노루 서식지 일대에 백암산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고 있어 생태계 훼손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환경부는 민북지역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민북지역 내에서도 공간을 등급별로 나눠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할지 오는 9월까지 용역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민북지역 내에서도 우선순위를 둬 보호지역 지정을 추가하는 등 종합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이 지역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자체, 전문가와 이곳을 보호지역으로 지정하는 일이 우선일지, 계획된 하천사업이나 케이블카 조성 등 개발사업 운영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등 의견을 모으고 있다”며 “행동을 취해야 하는 대책을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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