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청소노동자 사건으로 본 노동 환경
대학교 노동자 휴게실 상황 열악
남녀 함께 쓰는데 커튼으로 분리
현장선 “환복 등 불편한 점 많아”
서울 대형병원들도 환경 비슷해
비상계단 등 찾아 봉투 깔고 쉬어
노조 “구색맞추기용 조성” 지적
“처음에는 매연 때문에 숨도 못 쉴 지경이었어요. 일한 지 7년 정도 됐는데 지금도 목이 칼칼해요.”
12일 오전 10시쯤 중앙대학교 R&D센터 지하 2층 문을 열고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매연 냄새가 마스크 속으로 파고들었다. 차들이 빼곡히 주차된 주차장은 환기가 제대로 안 돼 조금만 걸어도 탁한 공기가 느껴져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주차된 차량 옆에 작은 문이 보였다. 청소노동자 15명이 이용하는 휴게실이었다.
창문 하나 없는 5평짜리 휴게실에는 작은 환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휴게실 안에는 공기청정기도 있었지만 역부족인 듯했다. 청소노동자 A씨는 “워낙 공기가 안 좋아서 효과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며 “1년에 3∼4번 필터를 가는데 그때마다 까만 먼지가 가득 나온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을 계기로 주목을 받고 있는 청소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다른 대학이나 대형병원의 문제이기도 했다.
이날 중앙대 R&D센터 휴게실에서 만난 청소노동자들은 “인원에 비해 휴게공간이 너무 좁다”고 입을 모았다. 공간이 협소한 탓에 아예 휴게실을 찾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한 청소노동자는 “점심시간 때 다 같이 있으면 좁아서 눕지도 못한다”며 “매연도 있고 공간도 좁으니 내려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보통 청소도구함에 물건을 놓고 잠시 쉬는 식으로 지낸다”고 말했다.
중앙대 다른 건물의 휴게실도 상황은 비슷했다. 20여곳 중 3곳은 남성 경비원과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휴게실을 공유하고 있었다. 청소노동자 B씨는 “얇은 커튼으로 남녀 공간을 분리했는데 옷을 갈아입을 때 등 불편한 점이 많다”며 “공간을 제대로 나눠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앙대 관계자는 “불편하다는 민원이 있어 최대한 공간을 확보해 분리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김경규 보건의료노조 조직위원장은 “휴게실이 근무 공간과 너무 멀거나 좁아서 ‘콩나물시루’라고 불리는 곳도 있다“며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구색 갖추기’용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청소노동자 휴게실 상황은 더 열악했다. 휴게실에는 에어컨이나 선풍기 등 냉난방 시설이 구비돼 있지 않았다. 근무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휴식 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없었다. 이 병원 청소노동자 2명은 근무 중 휴식 시간이 되자 익숙한 듯 비상계단 아래 작은 공간에 종량제 봉투를 깔고 앉아 휴식을 취했다. 인적이 뜸한 비상계단이나 화물용 엘리베이터 앞 공간이 이들의 휴게실이었다. 청소노동자 C씨는 “쉴 때마다 대걸레 2개를 챙긴다”며 “하나는 바닥이 딱딱해 방석처럼 쓰고 하나는 쿠션처럼 목 뒤에 받친다”고 말했다.
이 병원에서는 지난해 여름 산책로를 청소하던 60대 여성이 일사병으로 쓰러졌다.
이 병원의 청소노동자 D씨는 “샤워시설을 이용할 수도 없다”면서 최근 논란이 된 서울대 청소노동자 ‘갑질’ 사건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 역시 관리자들의 크고 작은 갑질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관리자에게 찍힌 노동자들은 궂은일을 떠맡거나 연장 근무를 하곤 한다고 전했다. D씨는 “청소노동자들 대부분은 고령의 노동자”라며 “이 병원이 마지막 직장이라 생각해 저항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건물에 휴게실을 설치한 공공병원도 있었다. 지난 2월 이 공공병원의 휴게실에서는 화재가 발생해 인명 참사가 날 뻔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난방시설이 없는 가건물에 휴게실을 설치해 전기로 난방을 하다가 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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