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초기, 사회구조적 재난으로 인식”
“법적 처벌만 강조되면서 침몰원인도 규명 못 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책임자 처벌 위주의 이른바 ‘사법주의’ 한계에 갇혀 참사 이후 7년이 지난 현재까지 난항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책임자를 찾아내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하고, 정치권에서 이 사건을 둘러싸고 갈등이 격해지면서 세월호 침몰 원인이 규명되지 못했고, 결국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논의를 위축시켰다는 것이다.
2일 학계에 따르면 박상은 전 세월호 특별조사위 조사관은 한국과학기술학회가 발행하는 ‘과학기술학연구’ 세월호 특집호에서 ‘세월호 재난의 책임 배분 딜레마’라는 논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박 전 조사관은 논문에서 “2014∼2015년 참사 초기에는 세월호 사건을 국가와 기업책임이 결합한 ‘사회구조적 재난’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컸다”고 분석했다.
참사 원인은 규제완화와 기업의 무책임한 이윤추구, 무능한 관료, 언론의 전원 구조 오보 등 국가 시스템 전반에 걸쳐 있는 것이라고 인식됐고, 당시 공동체의 열망은 ‘세월호 이후 사회는 달라야 한다’는 교훈에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상규명 요구가 정치권에서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다 세월호 특조위 조사 방해, 대통령 탄핵 등의 과정을 거치며 사법주의와 진영론이 강화되기 시작했다고 박 전 조사관은 지적했다.
그는 특히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인식이 ‘책임자를 찾아내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사법주의로 흐르면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도 침몰 원인에 대해 합의된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선조위는 2018년 활동을 종료하며 침몰원인 조사 결과와 관련해 ‘내인설’(복원력이 나쁜 상태에서 항해하던 중 선체 내부 결함이 발생해 침몰)과 내인설을 부정하는 ‘열린 안’ 2가지를 내놓았다.
이에 박 전 조사관은 “두 안을 나뉘게 한 것은 과학 그 자체가 아니라 ‘누가 잘못했는가’를 찾으려는 사법주의와의 공명 여부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합의되지 못한 보고서는 이를 ‘읽히지 않는 보고서’로 만들어 선조위 종료 이후 한국 사회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아는 게 점점 줄어들었다”고 주장했다.
선조위는 세월호가 1분 만에 좌현으로 45도 이상 기울었고 물이 들어오지 않게 막아둬야 할 곳이 열려 있었다는 점 등을 밝혀냈으나, 이를 아우를 종합적 재난 서사가 없어 ‘세월호 참사는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다’는 인식을 강화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전 조사관은 2003년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폭발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잘못된 조직문화에서 기인했다고 지적한 컬럼비아호 사고조사위(CAIB)를 언급하며 사법주의 한계를 넘어 구조적 원인규명과 이를 시정하는 조사기구의 권고가 권위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술지 서문을 작성한 전치형 카이스트 교수는 “재난 조사는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진실을 발견해 밖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아니다”라며 사회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을 구성하는 방향으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과학기술학연구’는 세월호 참사를 연구해온 전문가들이 세월호 재난조사 상황을 정리하고 한계를 분석하는 특집호로 기획됐다. 특집호에는 박 전 조사관(충북대 사회학과 박사과정)뿐 아니라 홍성욱 서울대 교수, 김성수 뉴스타파 기자, 김성원 최종현학술원 연구원 등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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