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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대리주차. 휴게시간도 보장 못받아” ‘경비원 갑질 금지법’ 사각지대 아파트 관리원

입력 : 2021-10-24 18:44:30 수정 : 2021-10-24 20: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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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부터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 따라 경비원에게 대리 주차·택배 배달 지시할 수 없게 됐으나 현장선 "유명무실" 푸념
압구정 아파트 대단지 관리원 “24시간 격일 근무·대리 주차·택배 배달·재활용 정리·주민 찬반투표지 수거까지 경비원 때와 똑같이 일한다” 호소
지난 22일 오전 출근 시간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관리원이 대리 주차를 하고 있다.

 

“이름만 ‘관리원’이지 사실상 경비 업무부터 대리 주차까지 다 하고 있습니다.”

 

지난 21일부터 이른바 ‘경비원 갑질 금지법’(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에 들어가 아파트에서 대리 주차나 택배 배달 같은 허드렛일을 시킬 수 없게 됐으나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몇몇 아파트에서 경비원에 준하는 업무를 하는 ‘관리원’들은 “법 개정에 사각지대가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업무 제약이 많은 경비원 대신 관리원을 고용하는 ‘꼼수’로 법망을 피해가 희생을 강요 당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갑질 금지법은 경비원의 업무 범위를 구체화해 근로조건을 개선하려는 목적인만큼 개인차량 주차대행(대리 주차)이나 택배 물품의 세대 배달, 관리사무소 보조 등의 업무는 원칙적으로 제한된다. 이를 어길 시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기존 경비원을 관리원으로 이름을 바꿔 고용하면 이 같은 제약이 사라진다는 게 현장에서 나온 불만의 골자다. 관리원은 경비원과는 달리 공동주택관리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탓이다.

 

실제 지난 22일 오전 6시 반쯤 찾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대단지에서는 관리원 직함을 단 이들이 대리 주차 등으로 분주했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주민들을 위해 미리 차를 빼놔야 한다는 게 관리원들의 하소연이다.

 

이곳에서 10년째 근무 중이라는 A씨는 “어제부터 법이 시행됐다는데 딴 나라 이야기”라며 “우리는 관리원으로 계약을 해서 경비 업무부터 온갖 잡일은 다 한다”고 털어놨다.


다른 동의 관리원이라는 B씨 역시 “이전에 경비원 업무를 하던 때와 똑같이 일한다”며 “24시간 격일 근무하는 것도 그렇고, 대리 주차와 택배 배달, 재활용 정리, 심지어 주민 찬반투표까지 직접 받으러 다닌다”고 거들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대단지 주민들이 관리원 초소에 맡겨 놓은 자동차 키.

 

A씨와 B씨가 일하는 아파트는 단지는 지하 주차장이 없다. 심각한 주차난 탓에 2017년 이미 경비원에 ‘발레파킹’을 지시한 문제로 한차례 홍역을 앓은 바 있다. 당시에도 주민들이 맡긴 자동차 키로 경비원들이 수시로 대리 주차를 했는데, 3년이 지났어도 이 같은 일상은 바뀌지 않았다는 게 관리원들의 하소연이다.


이 단지는 2018년 경비원 전원을 해고해 반발이 빚어졌는데, 이후 경비원 직접 고용 대신 위탁 관리 계약을 맺고 관리원을 우선 채용 중이다. 실제 이 단지 경비인력 100여명 중 90% 이상이 2018년 이후 관리원으로 채용됐고, 이들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 나머지는 ‘외곽 경비원’이라는 직함으로 채용돼 동 주변의 순찰을 도는 등 경비 업무만 담당한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단지 관리원이 공개한 근로계약서. 이 관리원은 “‘경비원 갑질 금지법’이 시행되니 부랴부랴 다시 쓰라고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단지에서 만난 관리원 대다수는 경비원이 아니기에 갑질 금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근로자로서 휴게 시간 또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아 분통을 터뜨렸다.

 

관리원 C씨는 “주 52시간제에 억지로 맞추려고, 월급 적게 주려고 하루 24시간 중에 11시간을 휴게 시간으로 계약하긴 한다”며 “그런 휴게시간 중에도 주민이 부르면 바로 달려 나가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밥을 먹다가, 졸다가 뛰쳐나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라며 “휴게 공간이 따로 있지만 차를 빼줄 일이 언제 생길지 모르니 좁디좁은 초소 붙박이 신세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동료 D씨는 “문제 생길까봐 업무 일지에는 휴게 시간을 꼬박꼬박 작성·기입하게 하는데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며 “관리원이 되고 나니 경비원 때보다 임금도 줄었다”고 울상을 지었다.

 

아파트 관리원에 대리 주차를 지시하는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관계자는 “경비원-관리원 이원화 제도는 주차난이 심각한데도 경비원이 이 업무를 할 수 없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용한 것”이라며 “관리원 계약상 대리 주차 등의 업무가 포함되어 있다면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안성식 강북노동자종합지원센터장은 “관리원이 경비업법의 보호는 받지 못하더라도 근로기준법의 적용은 받는다”며 “결국 경비원이든, 관리원이든 법의 보호 내에서 보다 정확한 정의와 구체적인 업무 범위가 정해져야 해결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김수연 인턴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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