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으로 숨진 황예진씨 母 “상해치사 아닌 살인죄 물어야” 눈물로 재판부에 호소

18일 2차 공판서 검찰 증인 출석해 신문서 "명백한 살인" 주장
피고인 영상 보며 눈물…방청객 "가증스럽다" 야유도

여자 친구 황예진씨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A씨가 지난 9월15일 서울서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 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데이트 폭력으로 숨진 고(故) 황예진씨의 어머니가 재판부에 “공소장 변경을 통해 살인죄를 물어 피고인을 엄벌에 처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 12부(부장판사 안동범)는 18일 상해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남성 A씨의 2차 공판을 진행했다.

앞서 A씨는 주변에 자신과 연인 관계라고 알렸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인 황씨를 폭행해 결국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이날 황씨의 어머니는 검찰 측 증인으로 직접 신문에 응하면서 “공소장에 적시된 혐의를 살인으로 바꿔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고의성이 있다는 게 그의 증언이다.

황씨 모친은 “일방적이고 심각한 폭행으로 딸이 사망했다”며 “국민 시선으로 볼 때, 피해자 부모가 봐도 명백한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다투고, 헤어지는 문제로 인한 우발 살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범죄 심리학자도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사건 당일 폐쇄회로(CC) TV 영상이 언론에 공개된 뒤 범죄 심리학자들이 이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황씨 어머니는 또 “딸이 (A씨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모든 걸 주고 사랑했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아프다”며 “엄마, 아빠인 저희는 슬퍼할 시간이 없다”고 흐느꼈다.

뉴스1에 따르면 가득 찬 방청석에서도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A씨 변호인은 이 자리에서 황씨 어머니에게 “100번이라도 사과하고 싶다”며 “부족하지만 기회를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유족에게 사과하려고 한다며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해 선고기일을 넉넉히 잡아줬으면 좋겠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더불어 재판부에 선처를 요청하는 부모와 친구 등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앞서 검사와 A씨 측은 증거로 제출된 CCTV 영상을 보면서 각각 상황을 설명했다.

A씨가 영상을 보던 머리를 쓸어내리거나 눈물을 흘리자 방청석에서 “가증스러워”라며 야유도 들렸다고 뉴스1은 전했다. 

A씨 변호인은 “피해자가 먼저 피고인 뒷머리를 잡는 등 도발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A씨가 위협하는 상황에도 피해자는 바닥에 떨어진 커플링을 기어가서 챙겼는데, 소중히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자 방청석에선 다시 울음이 터졌다.

나아가 검찰은 “(황씨가 죽어가던) 급박한 상황에서 A씨는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 (황씨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바꿨다”고 지적했고, 변호인은 “(A씨는) 바꾼 적이 없다고 말한다”고 반박했다.

검찰에 따르면 황씨가 쓰던 ‘아이폰’은 비밀번호가 바뀌는 바람에 디지털 포렌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황씨 모친은 재판 직후 기자들과 만나 “3개월 동안 CCTV를 본 결과 모두 7차례 폭행이 있었다”면서 “CCTV가 (증거로) 채택됐기 때문에 상해치사에서 살인죄로 공소장을 변경할 것을 검찰과 재판장에게 요청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법정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할 생각이 있었다고 생각하느냐”고 검찰이 묻자 “A씨가 15분간 딸을 7차례 폭행했다”며 “딸이 폭행으로 의식을 잃을 무렵 A씨는 119 신고도 않고, 112에 신고하다 중지하거나 허위 신고를 했다”고 답했다.

나아가 “심폐 소생술 응급조치도 하지 않고 딸을 끌고 다니며 머리를 바닥에 부딪히고 목을 꺾게 했다”며 “A씨가 딸을 살릴 의도가 있었다면 112 신고를 끊거나 119 거짓 신고, 허위 설명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울먹였다.

황씨 유족은 앞서도 살인죄라고 주장했지만 사건을 수사한 서울 마포경찰서는 고의성 여부를 확정하기 어렵다며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했었다.

이 사건은 황씨 어머니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A씨의 엄벌을 호소하는 글을 올려 널리 알려졌다.

황씨 모친은 “A씨는 운동을 즐겨하고 응급 구조사 자격증이 있는 건장한 30살 청년인 반면 딸은 왜소한 체격”이라며 “A씨는 고의가 아니었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자신의 힘이 연약한 여자를 해칠 수 있었다는 것을 몰랐겠느냐”고 반문했었다.

내달 13일 열리는 3차 공판기일에선 검찰 측의 피고인 신문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앞서 A씨는 지난 7월25일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황씨와 말다툼을 하다 폭행한 뒤 119에 전화를 걸어 “여자 친구가 술을 많이 마시고 취해서 넘어지다가 다쳤다”는 취지의 거짓 신고를 해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들은 혼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으로 이송된 황씨는 약 3주 동안 혼수상태로 있다 결국 숨졌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7월 말 A씨에게 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도주 우려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기각했었다. 이후 추가 조사를 진행한 경찰은 지난 9월 상해치사 혐의로 다시 신청해 발부받았다.

김현주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