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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그냥 약한 채로, 모순된 채로, 서로 온기를 나누자는 게 제 방식의 휴머니즘”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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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2-10 07:30:00 수정 : 2022-02-08 16: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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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작가. 남정탁 기자

이러다가 정말 소설을 못 쓰는 거 아냐, 하고 작가들이 많이 하는 엄살이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한 건 그 즈음이었다. 2019년 가을, 새로운 마음으로 단편소설을 다시 쓰려 했지만 잘 써지지 않았다. 5년간 매달려왔던 장편소설 『빛의 과거』를 그해 여름 펴낸 뒤였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다. 괴롭고, 불안했고, 초조했다. 가을에는 이미 시작했어야 했는데, 겨울은 이미 성큼 다가왔는데, 마감은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그래, 일단 급하니까, 내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쓰자. 자신이 잘 아는 얘기를 쓰는 게 소설의 기본자세 가운데 하나잖아. 그렇다면 뭐가 있을까....내가 잘 아는 얘기라면, 음, 그래! 뉴욕 얘기를 쓰자.

 

생각해보면, 그는 지인 K가 미국 뉴욕에 사는 동안 그곳에 자주 갔었다. 2008년 K가 뉴욕 소재의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왕래하기 시작한 이래, 1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뉴욕에 대한 경험과 사유의 지층 역시 켜켜이 쌓여있었다. 그리하여, 중견 소설가 은희경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첫 단편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를 문예지 『창작과비평』 2020년 봄호에 발표할 수 있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첫 단편을 쓴 뒤 2020년 다시 뉴욕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많은 것이 떠오르더군요. 다시 거기 가서 보니까, 아 내가 이 도시에 대해서 쓸 얘기가 좀 있구나, 그러면 연작으로 써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지요.”

 

은희경은 뉴욕을 배경으로 두 번째, 세 번째, 팬데믹으로 끝나는 네 번째 작품을 차례로 쓴 뒤, 이번에 연작 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문학동네)로 묶어냈다. 그의 일곱 번째 소설집이자 열다섯 권째 소설 작품. 세 번째와 네 번째 작품의 순서가 바뀌었지만, 소설집에는 어떤 낯선 조건에서 인간이 자신과 타인을 어떻게 보는가를 날카롭게 묘파한 ‘뉴욕 4부작’이 담겼다.

 

“여행이나 낯선 조건은 저한테 굉장히 중요한 소설적 소재입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기에 완전히 저를 다시 ‘프로그램’해야 하거든요. 어, 내가 이런 사람이었어? 하는 순간도 많고, 작가가 된 때부터 꾸준히 관심을 가졌던 내가 누구인가, 타인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하는 테마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죠. 결국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어떤 낯선 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하고 부딪히면서 나를 발견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더욱 놀라운 점은, 불황기를 넘어 출판 빙하기임에도 1995년 발표된 그의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이 현재 99쇄를 찍었고 5월쯤 100쇄를 돌파할 것이 확실시되는 등 독자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는데다가, 소설집과 장편소설 등 수십 편의 작품을 쓴 중견 작가임에도 여전히 혁신을 모색하며 소설의 밭을 갈고 닦고 있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그는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왔을까. 그가 펼쳐온 소설과 문학의 진경은 어떠한 것이고, 그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은 작가를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소설집의 첫 단편인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는 비정규직이었던 승아가 열흘 정도 머물 계획으로 뉴욕에 살고 있는 친구 민영의 집으로 오면서 시작된다. 승아는 친구를 위해 애써 집안을 청소하고 해독주스를 만들지만, 민영은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긴장이 고조된다.

 

―두 인물이 서로 좋은 의도로 행동하지만, 서로 자꾸 어긋나는데.

 

“인간은 모두 다른 존재인데도, 특히 가깝거나 사랑하는 관계일수록 자신의 방식대로 잘해주려고 하는데, 이는 결국 자기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 돼서 일방적인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사람 자체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방식으로 존중을 해야 되는데, 내가 해줄게, 하면서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다. 같이 여행을 간달지 어려운 일을 겪는달지 어려움에 직면하면 그런 것이 더 첨예해진다. 그래서 떤 낯선 곳에서 우리를 다시 보는 테마로 가져간 거다.”

 

―마지막에 승아가 “그럴 때 말이야, 왜 얼마 동안 어디를 생각해 봐. 거기에 대답만 잘하면 문을 통과할 수 있어”라고 말한 뜻은.

 

“미국에 도착해 공항을 통과할 때 왜 왔느냐, 얼마 동안 머무느냐, 어디를 가느냐고 질문을 받는다. 어떤 다른 세계나 타인의 세계로 들어갈 때 역시, 무턱대고 내가 좋아하니까, 라고 하지 말고 스스로 자기 객관화를 하라는 의미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은유적으로 얘기를 하고 싶었다.”

 

표제작 「장미의 이름은 장미」는 이혼을 한 뒤 홀로 뉴욕으로 떠난 마흔여섯의 수진이 어학원에서 만난 세네갈 대학생 마마두와 조금씩 가까워지지만, 편견과 선입관 때문에 두 사람의 첫 나들이가 의외로 삐걱거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라는 표현의 의미는 무엇인가.

 

“셰익스피어는 우리가 장미라고 하면 아름다움과 향기를 떠올리는데 장미의 이름을 다르게 부른다고 하더라도 향기가 나지 않느냐며 이름을 무엇으로 부르더라도 향기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이름이 아닌 사실과 본질을 봐야 된다고 취지로 말했다. 저는 너는 여자니까, 너는 남자니까, 너는 아이니까, 너는 노인이니까, 이런 식으로 이름으로 규정해 버리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보다는 ‘장미의 이름은 장미일까’쯤 될 것이다. 제목이 의도한 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것이 혹시 편견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자는 의미로 썼던 것 같다.”

 

―소설에는 다양한 형태의 혐오나 편견, 선입견이 나오는데(예를 들면, 첫 단편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에는 미국인 여성의 한국인 여성에 대한 선입견이나 마이크의 흑인에 대한 편견이, 「장미의 이름은 장미」의 경우 타민족의 한국인 김치에 대한 편견, 반대로 한국인들의 콜롬비아 사람에 대한 편견 등도 나온다).

 

“우리가 외지에 가면 만나게 되는 편견이나 선입견 등 소설 전체가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현지에서 피해자일 수 있지만, 우리 역시 누군가를 혐오할 수 있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의 경우 수진은 학교 안에서 마마두와 친하게 지내지만 바깥으로 나가게 되면서 갑자기 타인의 시선으로 혐오나 편견을 드러내지 않는가. 차별을 받을 수 있지만, 자신 역시 타인에게 폭력적인 어떤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것을, 현지에 살고 있는 사람, 미국 사람, 여행자, 교민 등 여러 입장에서 써봤다.”

 

마지막 단편 「아가씨 유정도 하지」는 오십대 남자 작가인 화자가 문학 행사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게 되는데 팔십대 모친 유정도 동행하면서 시작한다. 모친은 의외로 능숙하게 행동하고 심지어 교포 에이미와 함께 뉴욕 관광까지 나선다. 모친의 캐리어에서 우연히 보게 된 육십년 전 미국 땅을 밟았던 청년의 편지에는 당시 뉴욕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이 소설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건가.

 

“지성적이고 독특한 삶을 살아온 수잔 손택의 책을 읽다가 그의 연표를 보니 엄마와 같은 1933년생이어서 어떤 상상이 시작됐다. 엄마는 비록 평범한 사람으로 살았지만, 모든 개인에겐 각자의 히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엄마 개인의 역사를 한 번 써보고 싶었다. 또 할머니라고 하는 편견이 얼마나 사람에게 억압을 주는지에 대해 쓰고 싶었는데, 이것을 할머니가 여행하는 것을 통해 얘기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은희경 작가. /2022.02.04/남정탁 기자

―왜 노래 「울산 아가씨」의 가사를 제목으로 넣었는지.

 

“우리가 할머니라고 하면 가족 안에서 할머니의 모습이나 이미지, 역할을 생각하지만, 할머니도 자신의 개인적 인생, 욕망, 좌절도 있다. 할머니를 할머니로 보지 않고 아가씨 시절을 좀 떠올리게 하는 등 할머니의 개인성 같은 것을 좀 쓰고 싶었다. 일단 노래 이미지도 맞고.”

 

작품 속에서도 어머니 유정은 할머니에 대한 특정 편견이나 선입견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내가 인자하게 대하면 할머니라서 그렇다고 하고 냉정하게 대하면 할머니인 데도 그렇다고 하고, 결국 할머니가 인자하다는 생각은 안 바뀌지. 근데 내 성격이 냉정한 것하고 할머니인 것하고는 아무 상관없어.”(229쪽)

 

―소설 속에서 나오는 “사람을 관찰하고 판단하기 좋아”(208쪽)하는 소설가 화자의 모습은 혹시 작가의 자전적인 모습 아닌지.

 

“관찰과 해석, 소설가로서 제가 제일 많이 하는 일이다. 제 소설이 디테일이 좀 많은 것도 있다. 정확하게 보고, 정확하게 생각하고 싶어서 판단을 빨리 하지 않는다. 작가로서 어떤 선입견에서 끝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결국 이번 소설들은 뉴욕에 대한 경험을 켜켜이 쌓여야 가능했을 텐데.

 

“저는 제가 경험한 것들이 결국 소설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현재를 조금 열심히 살려고 한다. 현재의 시간을 똑바로 보고 받아들이면서 남겨놓으려 한다. 그것은 소설가로서의 어떤 창고 같은 것이니까. 그렇지만 미리 뉴욕에 대해 써야지, 하고 가면 안된다. 그렇게 되면 머릿속에서 이렇게 쓸까 하면서 자연스러운 관찰이 되지 않는다. 자꾸 의도대로 하려고 하니까. 소설과 아무 관련 없이 그냥 생활인으로서 모든 감각을 열어놓고 느껴보려고 한다. 또 어디를 갔다가 와서 그걸 바로 쓰진 않는다.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고, 더 알게 되면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조금 시간을 두고 쓴다.”

 

―소설집 전체에는 ‘무책임한 낙관’, ‘자기 연민이 불러오는 비관’, ‘자기 합리화의 유연함’, ‘독선적 진지함’, ‘관음적 우월감’ 등 재밌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제 문장 스타일이라고 할까. 추상어나 개념어가 조금 많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중에 거스르는 것, 잠깐 다시 읽을 부문이 있는 문장, 압축적인 표현을 좋아한다. 독자들에겐 호불호가 있는 것 같고, 조금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야기는 재밌고 구체적으로 쓰되, 어떤 개념 등은 정확하고 정밀하고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싶다.”

 

―전체적으로 이번 소설들이 이전에 비해 더 따뜻해졌다는 반응인데.

 

“맞다. 왜냐하면 지금 사람들이 너무 위축돼 있고, 여러 불안과 위험 속에 살고 있기에 조금이라도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따뜻한 면들이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아름다운 장면을 하나쯤 넣고 싶었다. 우리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건 우리들 서로이니까.”

 

은희경은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들이 나의 편견과 조바심을 자백하는 반성문인 셈이라서 내가 용서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긴장하고 있는 듯하다. 애써 내가 아닌 척했지만 네 편의 소설 모두에 내 독선적 진지함의 동선이 그래도 보인다”고 고백했다.

 

“생활인으로, 자연인으로서 저는 편견이 많지만, 작가로서의 저는 생활인 자연인으로서 저를 반성하고 비판하곤 해요. 너 왜 그랬어, 네 마음속에 뭐가 있길래 이렇게 한 거야, 라고요. 작가로서 이렇게 생각했으면 다시 안 그러느냐, 하면 생활로 돌아가선 다시 그런 편견이 나타납니다(웃음). 좋은 사람인 줄 알다가도 나도 똑같구나 정도 차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죠. 작가로서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어떤 모순 같은 것을 얘기하고 싶어요. 그것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린 다 이런 인간들이니까, 그냥 약한 채로, 모순된 채로, 이기적인 채로, 서로 온기를 나누자, 이런 게 제 방식의 휴머니즘입니다.”

 

소녀는 너무 이른 나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친구들은 모두 한 그룹으로 보이는 반면, 자신만 잘 섞이지 못한다고 하는 감정도 자주 느끼곤 했다. 부모의 교육열은 높았기에, 그는 혼자서 책을 많이 읽게 됐다. 책을 많이 읽으니까, 국어를 잘하게 됐고, 글도 잘 쓰게 됐다. 이는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그리하여 중고등학교 때 교지 편집부와 문예부 활동을 했고, 당연히 대학 국문과를 진학했으며, 소설가를 꿈꾸게 됐다.

 

1959년 고창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소설가를 꿈꾼 은희경은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부문에 「이중주」가, 같은 해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에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이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등단했다.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한 그는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은희경 작가. /2022.02.04/남정탁 기자

―일찍 문학의 숲에 들어왔음에도, 서른여섯의 나이에 소설가가 됐는데.

 

“일찍부터 작가가 꿈이었고, 글도 잘 썼지만, 한동안 작가가 되지 못했다. 작가는 세상에 대한 질문을 품어야 하지만, 저는 질문을 품지 않았다. 너무 모범생이었다. 순응주의자로 살았기에 질문이 없었고, 숙제가 주어지면 시스템 안에서 안전하게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열심히 정답을 맞추려 했던 것 같다. 또 생활에 너무 쫓겼던 측면도 있다. 숙제하듯이, 직장 생활을 했고, 결혼도 했으며, 두 아이를 키웠고, 적금을 부어서 집도 마련했다. 프리랜서로 글도 쓰고, 출판사 교정도 보는 등 여러 일을 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어느 새 30대 중반이 됐다.”

 

30대 중반 어느 날, 이것이 내 인생인가, 하는 어떤 각성과 함께, 소설을 한 번 써보자는 용기가, 어떤 간절함이 불현 듯 생겼다. 축복 같은. 남편의 허락을 받고 친정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서, 노트북 하나 들고 무주로 내려갔다. 한 달 정도 무주에 머무르면서 단편소설 다섯 편을 썼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회사를 다니면서 중편을 한 편 썼다. 두 달 만에 단편 다섯 편과 중편 한 편을 쓴 것이다. 이듬해 신춘문예에 응모, 중편이 동아일보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등단 이후, 그는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상속』,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중국식 룰렛』,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그것은 꿈이었을까』, 『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소년을 위로해줘』, 『태연한 인생』, 『빛의 과거』 등을 펴냈다.

 

―작품 세계를 조금 설명해 달라.

 

“작가 생활 초기에는 그 동안 살아왔던 안정된 삶에 머무르려는 ‘자연인 나’와 질문을 던지고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작가 나’라는 ‘두 개의 나’가 있었다. 그런데 작가로 살기 위해선 계속 질문을 해야 했다. 나를 지켜준다고 생각한 이 시스템이 결국 나를 부조리하게 적응하도록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야 했기에 냉소의 작가, 비관주의자라거나 차갑다고 한 것이다. 저는 제가 차갑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조금 더 정확하게 보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가족은 화목해야 하고 서로 조금 양보하고 배려하라는 등 이 시스템 속에 사람들을 적응시키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각성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 소설이 냉소적이고 비관적으로 보여진 것 같다. 우리의 세계와 삶이 서로 연결돼 있으니까, 동시대인으로서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항상 질문을 가지고 있고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본 게 제 소설이다. (특히 관계에 대해 오랫동안 천착해온 것 같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많이 쓴다는 것은, 타인이 궁금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갈망하는 것이며, 그런 갈망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계속 타인에 대해 고민하는 것 아닌가.”

 

특히 1995년 발표된 그의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은 독자들로부터 꾸준히 사랑을 받으며 현재 99쇄를 찍었고, 오는 5월쯤 100쇄를 찍을 게 확실시된다.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 많은 상도 받았다.

 

―첫 장편 『새의 선물』이 무려 100쇄가 임박했는데.

 

“『새의 선물』은 작가 생활의 문을 활짝 열어준 책이다. 저의 질문의 단초들이 그 책에 담겨 있다. 이 책 덕분에 안정된 환경에서 소설을 쓸 수 있었다. 100쇄를 찍었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어떤 힘이다. 계속 써도 된다는 어떤 격려니까. 다만, 작가가 된 지 27년이지만, 지금도 저의 대표작이다. 스스로 점점 더 잘 쓰고 있는데, 첫 책이 대표작이라는 것에 조금 좌절감이 없진 않다. 점점 소수 취향으로 가는 것 같다(웃음).”

 

―글쓰기 루틴이나 패턴이 있는지.

 

“아이들이 다 자란 이후 조금 여유 있게 소설을 쓸 수 있었다. 지금은 오전 7시쯤 일어나서, 먼저 누워서 인터넷과 SNS 등을 본 뒤, 침대에서 일어나서 고양이 밥을 준다. 이어서 거실로 나와서 커튼을 열고, 커피를 내려서 서재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글이 잘 안 풀리면 인근 카페에 나가서 쓰기도 한다. 작가 초기에는 카페에서 많이 썼다. 주로 오전에 글을 쓰고, 낮에는 놀고, 저녁에는 술 마시며 쉰다. 오전에 못쓰면 밤에 쓰고, 마감이 다가오면 오전과 저녁 두 텀을 쓴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규칙적이어야 한다.(글이 잘 안써질 땐 어떻게 하는지) 일산 호수공원 부근에 작업실이 있을 때에는 달리기를 많이 했다. 달리기를 하면 걸을 때와 생각이 좀 달라진다. 요즘엔 글이 잘 안 써지면 그냥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나쁜 방법으론 술을 마시는 것 있지만, 생각의 맥을 잃어버려서 술을 마시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 어떤 작가나 작품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딱히 없다. 어떤 작가다, 이런 것보다는 그냥 조금 오래 유효한 질문을 계속 하고, 독자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다. (시대가 바뀌면 질문도 바뀌는 것인가) 바뀔지 안 바뀔지는 저도 모른다. 제가 어떤 사람이 돼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저도 궁금하다.”

 

앞으로도 유효한 질문을 계속 던지고 싶다, 는 은희경의 희망이자 다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늘 작품을 통해 시대의 부조리와 우울을 예민하게 포착하려고 노력해왔고, 늘 동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품는 ‘동시대의 작가’를 지향해 왔으며, 늘 고독 속에서도 타인과의 관계를 갈망하며 관계를 주시해왔으니까. 지치지 않고, 즐겁게, 자신의 방식으로. 그리하여,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다음과 같이 기억될지도. 끊임없이 자신을 혁신하며 작품 세계를 확장해온 작가, 은희경의 이름은 은희경!(2022.2.10)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남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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