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2030 끌어들여서 증폭시켜
전문가 “선 넘으면 외교·국익에 도움 안 돼”
이번 대선 캐스팅보터로 올라선 2030세대에서 ‘반중 정서’가 극심해지자 여야 후보들도 9일 중국 때리기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특히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청년층에서 시작된 ‘혐중 감정’이 전 국민으로 확산하자 여야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중 저자세’라는 오명을 벗어나려고 ‘반중 정서’에 편승해가는 분위기이고, 국민의힘은 과잉 대응은 자제하면서도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프레임을 짜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판할 부분은 비판해야 하지만 득표 전략으로만 이용하려 든다면 큰 틀의 대중 외교에 도움이 되지 않고, 국민의 지지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중국발 ‘문화 공정’과 ‘편파 판정’ 등 논란이 불거지면서 정치권에서는 대응 수위를 놓고 고심 중이다. 우선 격앙된 국민 정서에는 공감하지만, 외교 문제가 걸려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CBS라디오에서 “(편파판정 문제는)정말 심각하지만 더 걱정되는 건 지금 우리 국민들이 심판에 분노하는 게 아니라 중국에 대해 분노하는 분위기로 확대되고 있다”며 “외교적으로 서로 문제가 되거나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 건 큰 게 아니다. 국민들 간의 우호가 깨지는 쪽으로 이게 악화되지 않도록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게 고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는 대중(對中) 관계는 경제와 안보가 엮여 있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만 실제 피해가 올 경우 강경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 후보는 전날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동서 해역에 북한이나 중국(어선의) 불법은 강력하게 단속할 것”이라며 “불법 영해 침범인데 그런 건 격침해버려야 한다. 소말리아 (어선)가 왔어도 봐줬겠는가. 분명하게 하고 평등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문화공정에 대해서도 “문제는 지적하는데 더 악화하지 않도록 하는 게 유능한 것”이라며 “우리 피해가 작게 되도록 중국도 자중하도록 하는 게 리더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영해를 침범해 어민의 생계를 위협하면서도 통제에 따르지 않는 불법어로에 강경 대응해야 한다는 말은 아주 오래전부터 밝혀온 일반적 입장”이라며 “불법조업 단속 현지에서 몰수와 폐기 처분을 동시에 실시한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평소 생각이라고 포장했지만 반중 감정이 커진 상황에서 대중 저자세로 나오는 문재인정부와 달리 ‘할 말은 한다’는 차별화를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후보는 지난해 중국발 요소수 공급 부족 사태에 대해서도 ‘차이나 리스크’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중국 눈치 본다고 배치하면 안 되는데 중국 민간어선은 격침하느냐”라고 반문했다.
국민의힘은 반중 정서가 커지는 상황이 선거에 불리하지는 않지만 과하면 역풍이 불 수 있어서 조심히 대응하는 중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정부·여당이 그간 친중 정책을 펴온 와중에 이런 일이 발생해 우리에게는 나쁘지 않은 이슈이지만, 정치적 문제로 비화시키면 후폭풍이 불 수 있어 국민감정을 그대로 반영하는 수준에서 메시지 조절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안보 문제를 고리로 한 중국 리스크는 확고히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후보는 이날도 사드 배치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 후보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1조5000억원을 들여 우리가 구입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후보는 지난달 30일 ‘사드 추가 배치’라는 6글자짜리 공약을 올렸고, 온라인 청년 커뮤니티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북한의 무력 도발이 연일 문제가 된 상황에서 내놓은 공약이라지만 다른 진영에서는 중국 감정을 건드려 우리 경제에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청년 세대의 ‘반중 정서’를 정쟁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건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주도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일 2017년 사진 한 장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면서 “다른 후보들은 사드 배치 반대론자”라고 호도했다. 해당 사진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의당 심상정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이 후보가 ‘사드 즉각 철회’라는 현수막을 들고 서 있었다. 이 대표는 또 민주당 이 후보가 고속도로 졸음쉼터에 태양광 그늘막을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자, 이 후보의 SNS에 댓글을 달아 “지금 이 타이밍에 중국 태양광 패널업체들을 위한 공약이 꼭 필요한가”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정책·공약과 관련해 중국을 엮어 코너에 몰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 정서를 공감하면서 표심을 얻는 전략은 불가피하지만, 자칫 국익에 해를 끼치는 상황까지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혜정 중앙대 교수(정치국제학과)는 “다른 정책보다 차별성이 큰 대외정책에 있어서 감정에 호소하는 방향이 후보들에게는 비용적 부담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대선후보들의 대중 강경발언의 속내를 짚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여야 모두 중국 관련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있어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차별화를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판정 문제 등 상황에 맞게 비판할 문제는 비판해야 하지만 과도하게 선거에 이용하려 든다면 국민들 눈치가 빠르기 때문에 득표에 도움이 안 될 수 있다”며 “반중 정서를 득표 전략으로 세우겠다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양 대선 후보가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현재 한반도 정세가 미·중 갈등과 남북관계 등 확실치 않은 상황 속에서 감정적인 말로 먼저 치고 나가면 새 정부가 들어서도 외교적인 운신의 폭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돌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에 대해 감정을 쏟아내는 건 적절치 않고, 각 후보가 절제된 메시지와 더 큰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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