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을 비롯한 1970~8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해외에 알리고 지원했던 폴 슈나이스 목사가 11일 독일에서 별세했다.
향년 89세인 슈나이스 목사에 대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엄혹했던 군사정부 시절 많은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꾸준히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고 세계에 알린 인물로, 그의 헌신에 감사하며 그 뜻을 이어나가겠다”고 애도의 뜻을 밝혔다.
슈나이스 목사는 1975년부터 1984년까지 독일 동아시아선교회 일본 파송 선교사로 일하며 유신 독재와 군부 정권에 저항하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외국에 알리고 지원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1973년 3·1 민주구국선언과 1974년 민청학련사건 관련 재판을 빠짐없이 참관해 당시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한편 재판부에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1975년에는 일본 월간지 ‘세카이(世界)’에 칼럼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 연재될 수 있도록 한국과 일본을 왕래하며 칼럼니스트에게 관련 자료를 전달, 군부독재의 인권 탄압 실상을 해외에 알리는 데 일조했다.
1978년 12월 박정희 정권에 의해 입국 금지된 뒤에는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던 일본인 부인 기요코 여사를 통해 5·18 민주화운동 상황을 파악한 뒤 독일 언론의 취재를 요청했다.
그는 독일 NDR방송 도쿄지국의 위르겐 힌츠피터 기자에게 광주 취재를 요청했고 그 결과 5·18 민주화운동 영상은 세계로 알려질 수 있었다. 이는 영화 ‘택시운전사’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슈나이스 목사와 가족들은 200여 차례 한국을 오가며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자료 수집과 저서 활동도 했다.
이후 한국정부에 모든 자료를 기증한 슈나이스 목사는 공로를 인정받아 부인과 함께 광주 오월어머니집으로부터 2011년 오월어머니상을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5·18기념재단으로부터 공로상을 받았으며, 정부로부터 ‘민주주의 발전 유공’ 부문 국민포장을 받았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