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축구계에는 여러 리그와 대회에서 신출귀몰한 전략과 전술로 팀을 이끄는 명장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현역 최고 감독이 누구인가를 놓고 팬들의 설왕설래도 이어진다. 다만, 세계 최정상의 축구대회인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로 무대를 한정해보면 최근에는 단 한 사람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바로 토머스 투헬이다. 뛰어난 전술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괴팍한 성격으로 가는 팀마다 구설수를 만들던 그는 지난 2019~2020시즌 파리 생제르맹(PSG)을 이끌고 UCL 결승까지 오르더니, 이듬해 첼시의 임시 감독으로 자리를 옮겨 끝내 팀을 UCL 정상으로 이끌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팀에서 2년 연속 결승에 올랐을 뿐 아니라 끝내 우승까지 차지했으니 UCL에서만큼은 '현역 최고'라고 불러도 큰 무리가 없다.
무엇보다 토너먼트에서의 신출귀몰한 전략이 그를 빛나게 했다. 2시즌전 PSG도, 지난 시즌 첼시도 유럽 최정상 전력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상대의 약점을 철저히 분석해 끝내 이겨냈다. 이런 맞춤전술 속에 정규리그에서 부진했던 선수도 토너먼트에서는 예상 밖 활약을 해내곤 했다.
이런 투헬의 첼시가 마침내 시작된 2021∼2022 UCL 토너먼트에서도 존재감을 뿜어냈다. 23일 영국 런던의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열린 릴과의 16강 1차전에서 카이 하베르츠(23)와 크리스티안 풀리시치(24)의 골로 2-0으로 승리했다.
이날 득점을 만든 하베르츠와 풀리시치는 첼시가 최근 2시즌동안 분데스리가 레버쿠젠과 도르트문트에서 천문학적 이적료를 들여 야심차게 영입한 젊은 공격수들이다. 다만, 두 선수 모두 제대로 팀에 녹아들지 못해 하베르치는 올 시즌 리그 17경기에 나서 2골2도움, 풀리치시는 13경기 3골에 그쳤다. 부진한 리그에서의 활약에 잉글랜드 현지 언론도 이들을 ‘실패한 영입’이라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이 UCL 토너먼트에서는 전혀 다른 선수가 됐다. 최전방 공격수로 나선 하베르츠는 경기 초반부터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더니 전반 8분 하킴 지예흐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꽂아 넣어 선제골을 만들었다. 후반 들어 첼시가 주전 선수들의 연속 부상으로 위기에 빠지자 풀리시치가 활약했다. 역습 상황에서 은골로 캉테가 공을 몰고 간 뒤 페널티지역 왼쪽으로 쇄도하던 풀리시치에게 내줘 득점이 완성됐다.
올 시즌 첼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맨체스터시티, 리버풀에 뒤지며 리그 3위로 우승권 경쟁에서 멀어진 상태다. 로멜루 루카쿠, 티모 베르너와 하베르츠, 풀리시치까지 막대한 이적자금을 아부어 데려온 선수들의 연쇄 부진이 결정적이었다. 리그 환경과 팀 전술에 완벽 적응하는 것이 중요한 장기 레이스에서는 투헬의 전술적 역량도 이들의 부진을 막지 못했다. 그러나 토너먼트에서라면 투헬이 특유의 ‘쪽집게 전술’로 공격수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필요한 득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남아있었다. 이 기대감이 토너먼트 첫 경기인 16강 1차전에서 현실화됐다.
일단 이날 두골차 승리로 첼시는 8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 다음달 17일 열릴 원정 2차전에서 한 골 차로만 패해도 8강에 올라 대회 2연패 도전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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